[강영안 교수의 질문하는 삶] “주여, 나는 아니지요?”

입력 2025-04-15 00:31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수많은 질문이 오고 감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던지신 질문만 해도 최소 285개 이상이며 제자들 역시 예수님께 다양한 질문을 했습니다.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막 4:41, 이하 강 교수 의역)

‘주님,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이니까.’(행 1:6)

‘어찌하여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마 13:10)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큰 자입니까.’(마 18:1)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처럼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눅 11:1)

고난주간을 통과하고 있는 이때 “주여, 나는 아니지요?”(마 26:22, 막 14:18)라는 제자들의 질문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넘겨주리라)”(마 26:21)고 말씀했습니다. 이때 놀란 제자들은 예수께 “주여, 나는 아니지요?”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서로 둘러보면서 누구일까 물었습니다. 남에게 주목했습니다. 반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보면 제자들이 자신을 돌아보며 “주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물으며 자신을 각각 주님께 내어놓았습니다.

이 질문은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할지, 하나님 나라에서 누가 클지, 예수님이 비유로 가르치는 목적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과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님이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하신 건 가룟 유다를 두고 하신 일종의 예언이지만 제자들의 삶과 태도와 직접 관련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유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마 26:25)라는 유다의 질문은 다른 제자들이 물은 것과는 내용이나 의도가 전혀 다릅니다. 유다는 예수께서 자기를 겨냥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거짓 질문을 했습니다. 유다의 질문에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예수님이 답한 것은 사실은 긍정이었습니다. “맞아, 너야.” 그러나 옆에 있던 사람들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예수의 다른 제자들은 예수를 배반할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를 포함해서 모든 제자가 예수를 부인하거나 버리지 않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이 왜 “주님, 나는 아니지요?”라고 반응했을까요. 이미 배신하기로 작정한 유다 외에 다른 제자들은 아무도 자신에 대하여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물음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주님, 지금 이 순간은 주님을 배신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 모르겠습니다. 주님을 팔아넘길 가능성이 미래에 전혀 없을 것이라 자신할 수 없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저는 아니길 바랍니다. 주님, 붙들어 주십시오.”

“주님, 나는 아니지요?” 이 질문은 현재 자신의 모습을 서술하는 듯하지만 미래의 약속과 다짐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오지 않은 미래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예수께 자신을 맡기고자 했습니다. 이 질문은 오늘도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나의 이익과 나의 안전을 위해 예수 이름을 팔고 예수를 넘겨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질문 속에 담긴 기도가 오늘 우리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알듯이 예수의 제자들은 모두 주를 버렸습니다. 그들은 주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을 찾아오시고 그들을 부활의 목격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몸으로 살아내었습니다. “주님, 나는 아니지요?”라고 묻는 우리를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붙들어 주길 소원합니다.

(한동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