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담배 규제·금연 정책 후퇴… 위기의식 필요”

입력 2025-04-14 23:28
정부 예산 감소… 사업 축소 불가피
시민·사회단체 민간 활동도 전무

기존 정책은 궐련 담배 등에 집중
니코틴 필름 등 새 유형 대응 못해
시대 변화 맞춰 세밀한 진단 필요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담배제품과 흡연자의 담배 사용 행태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우리의 규제 정책과 금연지원 사업은 여전히 궐련에 머물러 있다”면서 “직면한 변화에 맞는 대응책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국내외적으로 담배 규제와 금연 정책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인 이성규 연세대 보건대학원 겸임 교수는 최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진단했다. 국내 대표 담배 규제 전문가인 그가 작심하고 문제 제기에 나선 이유는 뭘까.

이 센터장은 “국내에선 담배 규제와 금연지원 사업을 주도할 보건복지부가 코로나19 대유행과 의·정 갈등 사태 대응 등으로 건강정책 전반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왔다”고 짚었다. 이를 방증하듯 국내 담배 규제 및 금연지원 사업 예산은 2015년 담뱃세 인상 당시 약 1500억원에서 올해 약 900억원으로 깎였다. 이 센터장은 “정부 주도의 규제 정책과 금연사업이 약화하는 가운데, 이를 보완할 민간 차원의 활동이나 지원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국제적으로도 위기감이 심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보건기구(WHO)에 대한 미국의 막대한 예산 지원을 전면 차단했다. 또 최근 미국 삭품의약국(FDA) 산하 담배제품센터의 수장이자 국제 담배 규제 정책 강화를 위해 힘써온 인사가 핵심 인력들과 함께 타 부서로 전보됐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내 금연 업무부서의 전 직원이 일시 해임되기도 했다. 이 센터장은 “미국 내 담배 규제 정책의 위기는 국제사회 전반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런 대내외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담배 업계는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무연 담배(smokeless tobacco)’ 등 신제품을 빠르게 내놓고 있다. 어떤 제품은 담배인지 금연 보조제인지 혼란스러울 정도의 형태로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 센터장은 “이런 흐름을 볼 때 ‘담배 종결전(Tobacco endgame)’보다 ‘담배 규제 종결전’이 먼저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담배 종결전은 담배, 특히 궐련(일반담배)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해 흡연율을 5% 이하로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2011년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일부 국가가 해당 목표 달성을 위한 정책과 전략을 추진 중이다. 다음은 이 센터장과의 일문일답.

-국내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정부 금연 예산의 600억원 감소로 금연지원 사업의 축소가 불가피하다. 담배 규제 정책을 뒷받침할 연구비도 줄었다. 아마 국가 금연지원 사업 등록자와 금연 성공률 등 모든 면에서 부정적 지표가 나타날 것이다.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첫 단계는 이런 상황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 전문가, 국회 등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민간 부문 약화는 왜 그런가.

“우리나라 금연 운동은 정부가 아닌 시민·사회단체의 주도로 시작됐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운영난으로 과거 같은 역할을 기대할 수 없고 존폐 위기에 처해 있다. 전문가 학술단체인 대한금연학회도 1세대 회원들의 퇴진이 임박했지만 후진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상황은 누구의 문제라기보다는 정부와 시민단체, 학계가 시대적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센터장은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것은 현재의 동향을 파악하거나 전략을 수립할 수 없다는 것이고 시민·사회단체의 부재는 지지 세력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이런 상황이 담배 규제 종결전을 앞당기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신종담배 출시 동향은.

“액상형 전자담배와 합성 니코틴 규제에 모든 관심이 집중될 때 담배 업계는 ‘무연 담배’에 큰 관심을 보인다. ‘니코틴 필름’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니코틴 전달 제품과 미국에서 급성장세를 보이는 ‘니코틴 파우치’가 조만간 국내 시장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니코틴 필름은 금연 보조제와 구분이 어렵다. 두 제품 다 연기가 없어서 사용자 본인 호흡기에 미치는 악영향은 제한적이고 흡연자 주변 사람에게 미치는 간접흡연 피해 역시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기존 담배 규제 정책 및 금연 상담 방법 등 모든 면에서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 우리의 규제 정책과 금연지원 사업은 여전히 궐련에 머물러 있다. 흡연자는 향후 금연할 동기를 찾지 못할 것이다. 금연 보다 덜 위험하다고 믿고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담배제품 사용으로 이동할 것이다.”

이 센터장은 “뻔히 보이는 변화를 앞두고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보건당국과 전문가들이 국민과 흡연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에 대한 고민과 대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WHO 지원 중단 후폭풍은.

“이미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제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의 기능을 더욱 약화할 것이다. 실제 이달 중순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이던 WHO 주관 담배 규제 정책 회의는 연기됐고 재개 일정조차 불확실하다. 미국은 FCTC 비준국은 아니지만 WHO 전체 예산의 15~20%를 부담하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 후원 중단은 WHO 내 가장 큰 규모의 국제협력 사업인 FCTC 운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위기 의식이 필요하다. 위기를 인식할 때 해결을 위한 중지를 모을 수 있다. 또 진단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머물러만 있었던 담배 규제 정책과 금연지원 사업이 지속 가능한지 효과적인지, 향후 등장할 새로운 담배제품과 흡연자의 담배 사용 행태에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세밀한 진단이 있어야 한다. 아울러 교육 등을 통해 담배 문제에 대한 지지 세력을 늘리도록 해야 한다.”

글·사진=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