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교회 45곳 돌며 선교·구제·훈련… 어린이 사역 최전선에

입력 2025-04-15 03:03
장다솔(오른쪽) 김미향(왼쪽) 선교사 부부가 지난 8일 경기도 수원 하늘꿈연동교회에서 아프리카 케냐에서 동역하는 현지인 사역자 로버트 쳅코니 목사와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수원=신석현 포토그래퍼

‘1885년 이후 140년.’ 선교사들이 심은 복음이 자라고 또 자라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가고 있다. 세계 선교의 선두에 선 한국교회는 전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완수해 가고 있다. 선교 140주년 기획 ‘복음, 땅끝에서 피어나다’ 2부 ‘복음 들고 땅끝으로’에서는 국민일보 기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사역 중인 선교사들을 찾아가 그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헌신의 흔적을 조명한다. 2부 첫 시작은 사역 중 잠시 한국에 나온 30대 케냐 선교사 가족 이야기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사역하는 장다솔(36) 김미향(35) 선교사 부부와 삼 남매가 주인공이다.

발칸 반도에서 선교 소명을

“추수할 곳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능력도 시간도 재정도 모든 것이 한계입니다. 혼자서는 절대 못 합니다.”

지난 8일 경기도 수원 하늘꿈연동교회(장동학 목사)에서 만난 장 선교사의 목소리에서는 겸손함과 사명감이 느껴졌다. 장 선교사는 24살에 예수전도단(YWAM) 간사로 선교를 처음 경험했다.

“그때 발칸 반도 선교사들에게 김치를 배달하며 위로하는 ‘김치 사역’을 하러 갔는데 하나님께서 ‘추수할 곳은 많으나 일꾼이 없다’(마 9:37)는 말씀을 기억하게 하셨어요. 뜨거운 마음보다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선교사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반면 아내 김 선교사는 어릴 때부터 선교사로서의 소명이 있었다고 했다.

현지 목회자 양성과 다음세대 양육

선교사가 되기로 한 둘은 2015년 결혼했다. 1885년 우리나라에 온 호러스 G 언더우드와 헨리 G 아펜젤러 선교사들처럼 20대 중반이었다. 젊은 부부는 2019년 견습 선교사로 케냐에 첫발을 디뎠다.

2021년 정식 파송을 받은 부부의 사역은 다양하다. 사역지는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서쪽으로 250㎞가량 떨어진 캅카텟(Kapkatet)이다. 해발 1951m에 있는 작은 마을에는 2400여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장 선교사는 45개나 되는 교회를 순회하며 설교와 구제, 목회자 훈련을 하고 있다. 김 선교사는 ‘어와나 센터’를 통해 복음으로 다음세대를 키우고 있다. 김 선교사는 사역에 보람이 크다고 했다. “아이들은 심는 대로 열매가 바로 나와요. 순수한 아이들이 말씀대로 잘 따라 사역할 맛이 납니다. 오히려 할 게 너무 많아 사역의 분량을 조절해야 할 정도입니다.”

이날 교회에서 함께 만난 현지인 사역자 로버트 쳅코니 목사는 “이들의 사역으로 현지에서는 이전에 관심이 적었던 어린이 사역이 크게 확장되고 있다”며 거들었다.

현지인 존중, 사역의 시작

케냐 문화에 적응하면서 여러 도전에 직면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동과 여성을 하대하는 문화와 외국인은 속여도 된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었다. 그런데도 장 선교사는 현지인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려면 늘 사랑을 보여줘야 하며 무엇보다 현지인을 존중해야 한다고 봤다.

사역 현장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는 건 부부가 케냐의 사역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장 선교사는 “세례를 줄 때 특히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느껴진다”면서 “사역자들이 저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배워갈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선교사도 “아이들이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발견한 것 같아 기쁘다”고 덧붙였다.

“저도 선교사 될래요”
장 선교사 부부가 삼남매인 하라, 하온, 하임(앞줄 왼쪽부터)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수원=신석현 포토그래퍼

부부에게는 하라(8) 하임(7) 하온(5) 등 세 명의 자녀가 있다. 선교지에선 자녀 교육도 큰 고민이라고 했다. 김 선교사는 아이들을 홈스쿨링을 통해 교육하면서 일주일에 하루는 현지인 학교에 보내 말과 문화를 배우도록 한다.

장 선교사는 “사실 아이들 교육 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면서 “앞으로도 걱정하며 기도할 제목 같다. 다만 저를 키우신 하나님이 자녀들도 키우실 걸 믿고 매일 기도한다”고 했다.

간절한 기도대로 자녀들은 한국보다 케냐를 고향처럼 편히 여기며 잘 적응하고 있다. 장 선교사는 “자녀들이 다행히 선교사를 즐거운 직업으로 생각한다. 부모를 따라 이 길을 걷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케냐에서 오래 사역하고파

장 선교사는 조선을 사랑했던 선교사들을 매일 생각한다고 했다. 가장 존경하는 이는 미국인 루비 켄드릭(1883~1908) 선교사다. 1907년 우리나라에 온 지 9개월도 되지 않아 24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는 “만약 제게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그 모두를 한국을 위해 기꺼이 바치겠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처음엔 저도 켄드릭 선교사처럼 되고 싶었지만, 현지인들을 그렇게 사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자책하기도 했죠. 하지만 늘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긴 호흡으로, 앞으로 30년간 케냐를 지키고 싶어요. 케냐 전체를 바꿀 순 없겠지만 적어도 저와 함께 지내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어요.”

선교의 최전선에 선 이들의 헌신은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계속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듯하다. 눈물로 헌신했던 140년 전 선교사들이 남긴 값진 열매 아닐까.

수원=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