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9명 세례식… 작은 교회 ‘희망’을 쐈다

입력 2025-04-14 03:00
안정은(가운데) 목사가 13일 서울 양천구 목동주심교회에서 무릎 꿇은 중학생에게 세례를 집전하고 있다.

다음세대가 사라졌다는 말이 익숙한 시대에 한 교회에서 교회학교가 하나 더 생긴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 벌어졌다.

13일 서울 양천구의 한 상가 7층. 작은 교회 예배당 앞줄에 중학생 아홉 명이 나란히 앉았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거나 친구 어깨를 툭 치며 농담을 주고받던 아이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차례로 자리에서 일어나 정면을 응시했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영접하고 의지하기로 서약하십니까.” 안정은(62) 목동주심교회 목사의 질문에 세례 대상자들은 일제히 “네”라고 답했다.

이날 세례를 받은 아홉 명은 모두 중학교 2학년이다. 대부분 믿지 않는 가정 출신으로 교회는 처음이다. 사춘기 특유의 장난기와 어색함이 얼굴에 그대로 묻어났지만 이들의 고백은 또렷하고 분명했다.

성인 교인이 25명 남짓인 작은 상가교회에서 9명의 청소년이 한꺼번에 세례를 받는 일은 흔치 않다. 세례를 아직 받지 않은 이들까지 포함하면 교회학교 출석 인원은 15명에 이른다.

이 변화는 한 사람의 오랜 기다림에서 비롯됐다. 목동주심교회를 16년째 홀로 시무해 온 안 목사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인 2022년부터 때때로 교회 앞 놀이터로 나갔다.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들릴 때면 간식을 들고 나가 안부를 묻고 전도지를 건넸다. 아이들과 마주 앉아 먹을 것을 나누고 풋살장을 빌려 축구를 함께한 날도 있었다. 3년 가까운 노방전도에도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학부모의 항의 전화도 있었다. 그러던 지난해 11월 전환점이 찾아왔다. 비 오는 날 놀이터에서 축구시합을 하던 아이들 무리가 보였다. 안 목사는 컵라면을 사서 건네며 말했다. “감기 걸리겠다. 비도 오는데 안으로 들어오렴.”

그날 이후 교회는 아이들의 아지트가 됐다. 출입문 비밀번호를 아이들에게 알려줬고 간식과 간편식을 비치해 자유롭게 공간을 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언제든 와도 된다”는 목회자의 말 속에 담긴 진심이 아이들에게 닿았다.

이날 세례를 받은 오승훈(15)군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안 목사를 처음 만났지만 교회에 발을 들이기까지 3년이 걸렸다. 오군은 “처음엔 낯설었지만 목사님을 오래 지켜보면서 좋은 분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열 명 넘는 친구를 교회로 초대했다.

함께 세례를 받은 김민준(15)군은 “친구들이 교회에 다녀서 따라왔는데, 지금은 교회가 가장 편하고 행복한 곳”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늘자 교회도 변화하고 있다. 5년 만에 교회학교가 다시 열렸고, 이를 맡을 간사도 세웠다. 청소년 사역을 위한 ‘청소년 전도 헌금’ 항목도 만들었다.

안 목사는 “이 작은 교회에 아홉 명의 아이들이 세례를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며 “이들을 통해 다음세대 전도의 비전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을 통해 복음이 가정으로 확장되길 기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글·사진=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