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두 번의 탄핵에서 배운 것

입력 2025-04-14 00:38

윤석열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파면 결정에 “둔기로 얻어맞은 느낌”을 말했다고 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의 충격을 특수폭행 피해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선한 일을 하려다 린치를 당했다는 식의 ‘피해자 서사’로 읽힌다. 이 레토릭은 관저를 떠나면서 ‘영원한 나의 대통령’ 플래카드를 들고 눈물을 흘린 대통령실 직원들에게 “그만 울라. 우리는 옳은 길을 걸었다”며 위로했다는 장면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윤 전 대통령의 퇴장은 “모든 걸 제가 안고 가겠다”며 화장이 지워질 만큼 울었다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사뭇 다르다. 윤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밝은 표정으로 관저를 떠났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입장문을 냈다. 자신의 구속은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를 짓밟는 세력을 미래세대에게 알리게 된 임기 중 가장 빛나던 때라는 말을 했다는 보도도 있다.

보수의 풍경은 그러나 8년 전과 참 닮았다. ‘윤심(尹心)’과 ‘타도 이재명’만 외치는 ‘슈가맨’들의 경연장처럼 돼가는 국민의힘 경선이 특히 그렇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경선 때도 친박(친박근혜)·비박(비박근혜)으로 나뉜 10명 안팎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도 당의 간판으로 모셔 오려는 시도는 지금이 더 뜨겁다. 박심(朴心)을 말하던 김진태 강원지사는 2017년 “이번 사태에서 가장 큰 소득은 태극기 시민들이다. 애국보수가 언제 이렇게 모여본 적이 있나”라며 “눈물이 말라서 더 울 수도 없고, 더 이상 바닥으로 떨어질 것도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보수는 그해 정권을 넘겨줬고, 21·22대 총선에서도 내리 참패했다. ‘찬탄’(탄핵 찬성) 주자들은 배신자 낙인이 찍힌 뒤 서서히 소멸했고, 박 전 대통령을 지켰던 이들은 살아남아 기득권을 지켰다. 이쯤 되면 보수가 오답 노트를 잘못 복기한 것인지, 제대로 복기해서 이러는 것인지조차 헷갈린다.

더불어민주당은 보수의 이런 혼란을 한데 모아 ‘끝나지 않은 내란’이라고 부르고 있다. 8년 전 적폐청산의 대상이 됐던 것처럼 지금의 보수는 ‘내란 종식’ 프레임의 양분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 전 대표는 지난 4일 윤 전 대통령 파면을 헌정사의 비극이라 말하며 “저 자신을 포함한 정치권 모두가 깊이 성찰하고 책임을 통감해야 될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오는 16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탄핵을 위한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민주당은 탄핵 정국에서도 연쇄 탄핵을 말하며 윤 전 대통령 측에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거론할 명분을 부여해 왔었다.

보수는 이를 한데 모아 ‘반국가세력들의 일당 독재’라 부른다. 민주당의 정치가 반성의 시간은 뒤로 한 채 ‘닥치고 뭉쳐’를 말하는 보수 호소문의 글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 대선주자들도 “민주당이 입법권과 행정권을 모두 장악한 나라를 생각해 보라”며 지지를 호소한다.

거대 양당은 생존을 위해 대립과 갈등을 이어가는 적대적 공생 관계임을 지난 8년간 매일같이 증명하며 버텨 왔다. 한국 정치에서 이들은 고립적인 진영에 터 잡고 상대의 존재를 부정하는 방식으로만 상호작용을 해 왔다. 그 반응은 결국 ‘기득권 유지’를 향했고, ‘정치 혐오’로 귀결됐다.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지난 넉 달간 대한민국 광장 곳곳에서 소진된 시민들의 공력이 생각나 허탈했다. 이런 식이라면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시민들은 이번 대선에서도 거대 양당의 공생을 위한 거수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 구조를 깨지 않는 한 우리는 선택지가 없는 선택 속에 머물 수밖에 없다.

전웅빈 정치부 차장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