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장로교 선교부 집행위원회에 의해 정식으로 ‘선교사(Missionary)’로 임명됐음을 확인한다. 그는 해외 선교의 소명을 받아 ‘조선(Korea)’에서 봉사하게 됐고, 이 지역은 그의 ‘사역지(Field)’로 지정됐다.”
1893년 4월 10일 알레산드로 드루(유대모·1859~1926) 선교사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임명장을 받았다. 미국 남장로교의 명을 받은 그는 이듬해 3월 아내 루스 드루와 함께 조선 땅을 밟게 된다. 드루 선교사의 선교활동이 담긴 역사 자료들이 새롭게 발굴·공개됐다. 미 남장로교 소속 내한선교사의 임명장이 공개된 건 처음이다. 이밖에도 공개된 자료에는 1894년 주한 미 영사관으로부터 발급받은 공식 등록증과 임피(현 군산)군수의 공문서, 드루 선교사의 생활품 등이 있다.
드루 선교사는 1893년 앞서 파송된 남장로교 7인의 선교사 중 한 명인 윌리엄 전킨(전위렴·1865~1908)과 함께 호남지역 선교에 헌신했다.
미 남장로교 파송 의사였던 드루 선교사는 단순한 병의 치료를 넘어 그 이상의 가치를 전달하고자 했다.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웠던 한국인들에게 서구의 의학 기술과 치료법을 전하며 한국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기독교 박애정신을 실천한 것으로 평가된다. 군산에 자리 잡았던 1896년부터 2년간 4000여명을 치료한 것으로 전해진다.
드루 선교사는 1901년 건강이 악화돼 미국 캘리포니아로 안식년 휴가를 떠났다. 한국에서의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드루 선교사는 이민 한인을 돕는 등 미국에서도 조선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나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대한인국민회 사역을 도운 일화는 유명하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당시엔 많은 한국인이 그의 집으로 대피했다. 황혼을 보내던 그는 1926년 67세로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별세했다.
공개된 자료에는 입국 직후 드루 선교사의 모습도 담겼다. 그는 1894년 윌리엄 레이놀즈(1867~1951) 선교사와 6주간 조선 답사에 나섰다. 답사는 수도권을 비롯해 호남 서해안 대부분 지역을 방문하는 여행이었다. 당시 윌리엄 레이놀즈 선교사가 가족들에게 보낸 안부 편지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우리는 방금 내륙 지역을 다녀온 여행에서 돌아왔습니다. 교회들과 학교들을 방문하면서 매우 좋은 시간을 보냈고, 그곳들이 아주 좋은 상태임을 확인하게 돼 기뻤습니다. 당신이 좋아할 것 같아서 이 그림엽서를 보냅니다.”
이번 자료를 공개한 최은수 버클리 연합신학대학원(GTU) 객원교수는 1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자료들은 수년 내로 박물관에 안치할 계획”이라며 “현재 출판 과정에 있는 저서를 통해서도 자료를 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독교인의 역사적 사명인 ‘기억’의 역할을 다해 현 세대와 다음세대에게 자랑스러운 긍지이자 자부심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