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학의 해양 이야기] 잠수함도 꼼짝 못 하는 힘… 해양의 숨은 조력자 ‘내부파’

입력 2025-04-15 00:32

바다 내부서 느린 숨결처럼 생겨나
열·에너지·영양염 이동시키는 역할
선박·해저케이블 등 위협하기도
오랜 존재에도 최근 관련 연구 시동

구름 낀 하늘에서 때때로 일정한 간격으로 평행하게 늘어선 구름띠를 볼 수 있다. 이는 ‘내부파’라고 불리는 파동의 흔적이다. 내부파는 대기뿐만 아니라 해양에서도 발생하며 바닷속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숨겨진 현상이다.

내부파는 밀도가 달라지는 층에서 발생해 주로 그 층을 따라 옆으로 퍼지는 물결이다. 이런 내부파는 ‘밀도약층(pycnocline)’이라는 특별한 층 근처에서 자주 생긴다. 해수의 밀도는 수온과 염분에 의해 결정되며 깊어질수록 밀도가 높아진다. 밀도약층은 해수 밀도가 급격히 변하는 구간이다. 대양에서는 보통 수심 200m에서 1000m 사이에 항상 존재하고, 계절에 따라 수심 20m에서 100m 사이에서도 형성된다. 또한 얼음이 녹거나, 강수량이 많거나, 강물이 흘러드는 해역에서는 10m 이내 얕은 깊이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내부파는 전 세계 바다에서 발생하며 발생 깊이는 해역에 따라 다르다.

이 내부파는 해수면 파도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형태가 다양하며, 운동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린 특성이 있다. 해양 내부에서는 물이 느끼는 중력(복원력) 크기가 해수면에서 느끼는 중력의 1000분의 1 정도로 작기 때문인데, 이는 층 사이의 해수 밀도 차이가 작은 데 기인한다. 내부파의 높이(진폭)는 몇m에서 수백m에 이르며, 길이(파장)는 수십m에서 수㎞까지 다양하다. 주기도 몇 분에서 몇 시간으로 해양 내부에서 느린 숨결처럼 존재한다. 우리나라 주변 해역에서는 보통 내부파의 진폭이 수m에서 수십m지만 지구상 여러 곳에서 발생하는 강한 내부파의 진폭은 100m가 넘기도 한다. 실제로 남중국해에서는 240m에 달하는 내부파가 관측된 적이 있다.

2021년 4월 인도네시아 잠수함 ‘낭갈라 402’가 발리해에서 훈련 도중 실종됐다가 수심 838m 해저에서 세 조각으로 발견된 사고가 있었다. 인도네시아 해군은 잠수함이 내부파의 영향으로 끌려 내려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사고 해역이 2주마다 강력한 내부파가 발생하는 해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바닷속 보이지 않는 힘이 1000여t의 쇳덩이를 깊은 심연으로 끌고 내려간 셈이다.

내부파는 위아래로 분포하던 가벼운 물과 무거운 물이 각각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파도 모양을 만든다. 파의 진행 과정에서 가벼운 물과 무거운 물의 위치가 상하에서 좌우로 바뀌며, 이때 수직으로 나타난 두 해수의 경계를 ‘해벽(sea cliff)’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부파 진폭이 100m라면 해벽의 높이가 100m라는 의미다. 잠수함이 강한 내부파 해벽을 만나면 급한 부력 변화로 항행에 영향을 받아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해양학자들은 인도네시아 잠수함 사고의 예와 같이 일부 잠수함 실종 사고가 내부파와 관련 있다고 본다.

내부파는 바닷속에서도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그 영향이 해수면에 독특한 모양으로 나타난다. 해수면 위에 거칠고 부드러운 띠무늬가 번갈아 나타나는 현상이 그것이다. 동해안이나 제주도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 위에 이런 기다란 띠무늬들이 보였다면 그 아래에는 내부파가 있다는 것이다. 위성 사진에서도 내부파 흔적이 잘 드러난다. 내부파는 바다 표면의 거칠기를 바꾸기 때문에 광학이나 레이더 센서로 찍은 영상에 내부파가 이동하고 겹치면서 만들어내는 물결무늬가 잘 나타난다.

지난해 6월 19일 울릉도와 강원도 강릉 사이 해역에서 필자가 직접 찍은 물결무늬. 거칠고 부드러운 해수면이 반복돼 나타나는 물띠다. 오른쪽 사진은 1998년 7월 8일 유럽우주국(ESA)의 인공위성 ERS-2가 촬영한 홍도와 흑산도 인근 바다의 레이더 영상. ESA 홈페이지

해수면 파도가 바람에 의해 생긴다면 내부파는 주로 바닷속 조류의 흐름으로 만들어진다. 해수면에서는 배가 지나가거나 돌을 던져도 파도가 일듯 강한 바람이나 지진처럼 바닷속을 흔드는 강한 힘이 작용해도 내부파가 발생할 수 있다. 1893년 북극해를 탐험하던 프리드쇼프 난센은 ‘죽은 물(dead water)’로 표현한 이상한 현상을 겪게 된다. 배가 마치 신비한 힘에 붙잡힌 듯 전진 속도가 현저히 떨어진 것이다. 이는 담수가 밀도가 높은 바닷물 위에 얇게 덮인 상태에서 배의 프로펠러가 밀도 차이가 큰 경계면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로펠러의 추진력이 배가 앞으로 가는 데 쓰이지 못하고 내부파를 일으키는 데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 경험은 내부파의 존재를 처음으로 세상에 전한 사례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내부파는 잠수함과 선박 운항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해상 구조물과 해저 케이블에도 위협을 가할 수 있다. 또한 수온 분포를 변화시켜 연안 발전소의 냉수 취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하고 큰 영향은 내부파가 깨지면서 해수를 혼합하고 열, 에너지, 영양염 등을 이동시킨다는 점이다. 이들은 기후와 연안 생태계까지 깊은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다. 기후 모델에서는 내부파의 위치와 그로 인한 혼합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최근에는 내부파가 심해의 영양염을 끌어올려 해벽에 플랑크톤을 모으고, 이는 물고기와 고래를 끌어들이는 먹이망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가설을 입증하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6월 울릉도에서 강릉으로 향하는 배를 탔을 때의 일이다. 배가 출발한 지 1시간쯤 지나 누군가 “돌고래다”라고 외쳤고, 승객들이 창가로 몰려가 휴대전화를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돌고래 무리가 지나간 뒤 멀리 바다 위에서 길게 이어지는 물결무늬가 눈에 들어왔다. 거친 해수면과 부드러운 해수면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 물띠였다.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해양학자들에게는 바닷속 깊은 곳에서 내부파가 보낸 일종의 신호였다.

내부파는 과거에도, 지금도 해양 내부의 에너지와 물질들을 이동시키는 숨은 조력자다. 우리는 이제야 그 존재를 이해하고 활용하려 애쓰고 있지만 오래전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고래들은 이미 내부파 흐름 속에서 먹이를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재학 한국해양한림원 석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