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책임, 아직 개인의 영역
실질적 지원 턱없이 부족해
장밋빛 캠페인은 필요 없다
실질적 지원 턱없이 부족해
장밋빛 캠페인은 필요 없다
결혼 4년 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예정보다 조금 늦은 만남이었지만 품에 안은 순간 모든 기다림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출산의 감격을 느낄 틈도 없이 곧바로 육아 전쟁이 시작됐다.
아이를 안는 법도, 밥을 먹이는 법도, 기저귀를 가는 법도 몰랐다. 분유제조기, 젖병소독기, 살균기, 수유 쿠션과 침대까지…. 육아는 ‘장비빨’이라는 말에 따라 집은 그럴듯하게 꾸몄지만 정작 ‘먹고 싸고 재우는’ 생존의 기본엔 허둥지둥했다. 책에선 쉬워 보였던 이론이 현실에선 무용지물이었고 매 순간이 전쟁이었다.
출산 이틀째, 아이의 설소대가 짧다는 진단이 나왔다. 설소대는 혀의 아랫부분과 입바닥을 연결하는 얇은 띠를 말한다. 너무 짧거나 두꺼우면 혀의 움직임이 제한돼 수유가 어렵거나 나중에 발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간단한 시술(설소대 절제술)이라지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를 수술대에 올리는 일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시술 잘하는 병원을 찾아가 설소대를 잘라줬다. 진료실에서 아이를 붙들고 있던 순간의 공포는 지금도 생생하다.
육아는 고립된 싸움이었다. 조리원, 아파트로 이어지는 단절된 생활 속에 아내는 심리적으로 힘들어했다. 외향적이던 사람이 폐쇄된 공간에서 신체 회복과 정서적 버팀을 동시에 해내야 했으니 당연했다. 남편으로서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건강한 출산’이란 단어가 단지 아이의 건강만이 아닌, 산모의 몸과 마음도 포함된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정부는 결혼과 출산을 독려하지만 육아는 철저히 개인의 영역으로 치부한다. 공동 육아와 돌봄 시스템은 말뿐이고, 실질적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국공립 어린이집 대기도 하세월이다. 이런 현실에서 누가 둘째 아이를 고민할 수 있을까.
최근 정부는 출산율이 조금 반등했다는 통계를 내놓으며 희망적인 신호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는 착시에 가깝다. 출산율 반등의 배경은 1979년부터 1992년 사이 출생한 에코세대(1차 베이비붐세대인 1955~1963년생의 자녀 세대)의 인구(약 950만명) 기반 덕분이다. 인구가 많으니 출생아 수도 소폭 늘어났을 뿐 실제 결혼과 출산에 나서는 비율은 여전히 낮다.
주변을 봐도 그렇다. 내 또래를 기준으로 보면 절반 정도만 결혼했고, 결혼한 이들 중에서 또 절반 정도만 아이를 낳았다. 출산 뒤 몇 가지 지원을 받았다. 임신축하금 100만원, 첫 만남 이용권 200만원, 서울시 임산부 교통비 지원 70만원 등이다. 액수는 작지 않지만 대부분 바우처 형태로 지급된다. 사용처가 제한적이고, 정작 꼭 필요한 기저귀나 분유조차 마음껏 사기 어렵다.
육아를 시작하고 보니 가장 절실한 건 기저귀와 분유 같은 생필품이다. 이런 ‘생존 물자’는 현금으로 지원돼야 진짜 힘이 된다. 부모가 처음이라 미숙한 것도 있으나 처음이기에 더 지원이 필요하다. 결국 복지는 현금일 때 가장 실질적이다.
정부는 출산율을 올리려 무진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출산은 부부의 선택이자 책임이다. 지금의 20·30세대 중에도 결혼하고 싶고, 아이 낳고 싶은 이들이 많다. 단지 현실이 두렵고, 부부가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망설이는 것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장밋빛 캠페인이 아니라 기저귀와 분유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 육아를 온전히 떠안지 않아도 되는 사회 시스템이다. 육아의 공동체 책임. 이것이 저출산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다.
이제 아이는 생후 4주가 됐다. ‘50일의 기적’ ‘100일의 기적’이라는 말이 농담처럼 들렸지만, 지금은 그 기적이 간절하다. 밤마다 잠들지 않는 아이와 씨름하며 겨우 아침을 맞는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부모가 된다는 건 무엇일까. 우는 아이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러다가 ‘지금을 버텨보자’는 결론에 이른다. 아직은 철학보다 생존이 우선이다. 생후 27일 차 아들을 둔 초보 아빠의 단상이다.
김민영 문화체육부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