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10명이 지난달 서울 노원구 불암산 산림치유센터에서 나무를 베었다. 약 20cm 길이의 간이 쇠톱으로 지름이 5cm쯤 되는 작은 나무 기둥을 동강 냈다. 잘린 기둥에서 나무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황금순 산림치유 지도사는 “톱밥과 함께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자”고 말했다. 소방관들은 “나무를 자르는 느낌도, 나무 향기도 너무 좋다”고 화답했다.
이날 진행된 프로그램은 ‘서울형 정원처방’의 소방관 트라우마 치유 프로그램(사진)이었다. 소방관들은 화재 진압 과정에서 얻은 트라우마와 업무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심신이완 치유실에서 잔잔한 클래식 음악과 징 소리를 들으며 10분가량 명상도 했다. 불암산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센터 옥상의 선베드에 20분쯤 누워 휴식도 취했다.
소방관들은 “평온함을 찾았다”고 입을 모았다. 경규호 중랑소방서 소방사는 “중압감을 잊고, 평온함을 느낀 시간이었다”며 “평소 출동 벨과 비슷한 휴대전화 소리만 들어도 움찔했다”고 말했다. 최석근 성북소방서 소방사는 “쉴 때 유튜브나 인터넷을 하곤 했는데 오히려 더 피곤해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오늘은 제대로 쉰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서울형 정원처방은 우울, 번아웃 등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시민에게 치유 프로그램을 무료로 지원하는 정책이다. ‘정원 산책’, ‘맨발 걷기’, ‘숲 요가’ 등 자연을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소방관·경찰관 등 트라우마를 겪기 쉬운 직업군이나 유아·청년·노인 등 각 세대를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시는 지난해까지 시범사업으로 운영됐던 서울형 정원처방을 지난달 정식 사업으로 전환했다. 사업 효과가 입증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참여자 59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됐다는 응답이 96.7% 달했다. 프로그램 만족도는 96.5%로 나타났다.
시 관계자는 13일 “정원 감상은 도시 경관 감상보다 불안 수준을 20%, 부정적인 기분을 11% 낮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독일에선 정원처방으로 연간 4조원의 의료비를 절감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고 덧붙였다.
시는 올해 서울 둘레길, 치유의 숲길, 유아 숲 체험원 등 서울 전역 134개 시설에서 정원처방을 진행한다. 올해 정원처방은 약 1만명을 대상으로 2400차례 진행될 예정이다. 치매안심센터, 서울광역청년센터, 청년기지개센터 등에서 대상자를 모집한다.
이수연 시 정원도시국장은 “‘건강한 서울’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발굴해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김용헌 기자 y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