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분갈이

입력 2025-04-14 00:34

집안의 반려식물 중 가장 오래된 극락조. 20년 가까이 나와 함께 지낸 이 녀석은 키가 천장에 닿아 있다. 언젠간 꽃을 보면 좋겠다고 기대했지만 한 번도 꽃을 피운 적은 없다. 통풍이나 채광이나 비료 같은 것을 철저하게 신경 쓰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는 하지만, 어쩐지 그렇게까지 하면서 정성을 들이면 더 기대하게 되고 또 실망도 하게 될까봐, 그저 돌돌 말린 새잎 하나가 천천히 올라오고 아침마다 조금씩 잎을 펴는 걸 지켜보는 것만으로 기뻐하며 곁에 둬 왔다.

겨우 내내 이 화분의 흙이 제법 푸석해져 날이 따뜻해지면 꼭 분갈이를 해줘야겠다며 마음을 먹었다가 그제 그걸 실행에 옮겼다. 힘센 대형견을 혼자 목욕시키는 노고와 비교할 만할까. 아니면 내가 요령이 없어서일까.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 분갈이를 마쳤다. 의자를 옆에 놓고 올라가 샤워기를 대고 잎들을 시원하게 목욕시킨 후 제자리에 옮겼다. 짙고 보드라운 새 흙에 뿌리를 넣은 올봄의 극락조는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루 만에 더 늠름한 모습이 돼 있었다. 분갈이를 한 번 하면 2~3년은 꽃을 피울 수 없다고 알고 있지만, 혹시나 올해는 꽃을 피워주려나 하는 기대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반려식물을 더 들이려고, 가까운 화원에 찾아갔다. 프리지아, 작약 같은 봄꽃들이 향기를 내뿜으며 입구에 즐비했다. 화원을 둘러보며 몇 개의 식물을 고르다가 가장 안쪽에서 테이블야자와 극락조들이 우람하게 도열해 있는 걸 봤다. 거의 모든 극락조마다 꽃이 하나둘씩 펴 있었다. 주황과 보라와 빨강과 노랑이 화려하게 겹쳐진,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꽃이 핀 이 극락조를 하나 더 들일까 하는 욕심이 잠깐 들었지만 이내 관뒀다. 꽃을 피우지 않고 있는 우리집 극락조에게 괜히 미안해서다. 대화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식물일 따름이지만, 근 20년을 내 곁에서 숨을 쉬고 새잎을 꺼내며 함께 지낸 사이 아닌가.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