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관저에서 물러난 윤 전 대통령은 자중해야

입력 2025-04-12 01:10
윤석열 전 대통령이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나와 서초동 사저로 향하기 전 지지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어제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떠나면서도 승복과 화합의 메시지를 내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윤 전 대통령은 몰려든 지지자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는 등 유세 현장을 방불케하는 활기를 보였지만 자신을 파면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은 관저를 떠난 직후 변호인을 통해 “자유와 번영의 대한민국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냈을 뿐이다. 12·3 비상계엄 이후 4개월여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데 대한 사과는 없었다.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된 뒤에도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선 승리를 주문하고, 여당의 대선 주자들을 격려하는 등 관저 정치를 이어갔다. 이는 자신의 파면으로 초래된 조기 대선 정국에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가 아니다. 실패한 대통령으로서 당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탈당하거나 당과 거리를 두는 대신 여전히 당을 장악하려는 상왕 정치의 행태다. 일부 지지층이 유포하는 ‘윤 대통령 중심 신당’이나 정치 재개설은 어불성설이다. ‘비상계엄을 시도하다 파면된 국가원수’로 역사에 기록될 윤 전 대통령이 현실 정치에서 도모할 수 있는 입지는 없다.

윤 전 대통령은 내란죄 재판과 공천개입 수사 등이 본격화되면 법정과 검찰청사를 여러 차례 오가야 한다. 피고인과 피의자로 전락한 윤 전 대통령을 동정하는 국민들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를 1호 당원으로 둔 국민의힘은 중도 성향 유권자들에게 부정적으로 비칠 뿐이다.

윤 전 대통령이 이철우 경북지사에게 ‘사람을 쓸 때 가장 중요시 볼 것은 충성심’이라고 했다는 조언은 쓴웃음을 짓게 한다. 윤 전 대통령은 검사 시절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강골 검사의 이미지를 얻었다. 막상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오른 뒤에 충성심을 인물 기용의 가장 중요한 잣대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은 자기부정이다. 윤 전 대통령의 이런 조언이 이 지사의 해석처럼 주변 인사들의 배신에 깊이 상처받은 탓이라고 하더라도 당내 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사려 깊지 못한 발언이다. 당내 탄핵 찬성파를 배신자로 낙인찍으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윤 전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억울하거나 소회가 있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정치적 발언은 자제해야 한다. 윤 전 대통령이 존재감을 과시하려 할수록 국가 통합을 저해할 뿐 아니라 자신을 배출한 국민의힘의 발목을 잡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