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을 때는 트럭 운전을 하고 20년 넘게 목수로 일하며 평생 고생한 아버지가 귀갓길 계단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뇌사 장기기증을 통해 6명의 생명을 살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심장과 폐 등 주요 장기 외에도 뼈를 비롯한 인체 조직은 이를 기다리던 100여명에게 전해졌다.
장기기증 사연을 담은 뉴스는 언제나 마음을 울리지만, 한 사람의 희생을 통해 100명이 넘는 이가 새 생명과 희망을 얻게 됐다는 이야기는 놀라웠다. 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란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를 제외하고 완전한 남을 도와본 적이 언제였을까. 더구나 그 사람을 돕기 위해 내가 가진 무언가를 희생하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자문해보면 답은 더 어렵다. 자신을 내어주고 우리를 살리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겠노라 기도하지만, 사실은 작은 희생조차 어려운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뇌사 장기기증은 안타까운 이별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사람이 사는 동안 흉내조차 내기 힘든 예수님의 생명 나눔과 사랑을 실천할 마지막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기회라는 건 장기기증이 내 결심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기기증으로 생명을 살리고 떠난 이들의 삶을 조명하는 기획 시리즈를 진행한 적이 있다. 기증자의 가족 친구 등과 인터뷰를 통해 조명한 주인공들의 삶은 다채로웠다. 43세 나이에도 무대 위 현역으로 종횡무진하던 열정의 무용수, 딸을 위해선 아무리 힘든 일도 이겨내던 58세 철인 엄마, 20대에 걸린 희귀병으로 30년을 투병하면서도 봉사를 놓지 않았던 53세 집사, 거침없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던 어그레시브 인라인 1세대이자 다정한 남편이며 아빠였던 40대….
이렇게 다른 삶을 산 이들의 마지막 순간이 장기기증이라는 숭고한 결말로 같아지는 덴 여러 조건이 필요했다. 모두 사고나 뇌출혈 등으로 갑작스레 죽음의 문턱에 섰고, 의료진이 법적으로 뇌사 판정을 내렸으며, 주요 장기가 기증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이들의 죽음 앞과 뒤를 지킨 가족들이 있었다.
현행법상 뇌사자 본인이 살아있을 때 장기기증을 서약했더라도 실제 뇌사 판정 후 장기기증을 하려면 가족이 동의해야 한다. 그런데 기증자들은 저마다 그들의 부모, 자녀, 형제에게 너무나 특별한 존재였다. 사연 속 어떤 가족도 자신이 사랑한 이의 장기기증을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결정 앞에 선 가족으로선 장기기증을 선택하는 것은 곧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의미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뉴스를 통해 접하는 기증자의 감동적인 사연 뒤엔 모두 이런 부담과 슬픔을 이겨낸 가족들이 있다. 장기기증의 기로에 섰다는 건 앞서 말했듯 갑작스런 일을 당했다는 의미다. 가족들은 사고로 인한 충격 속에서 무거운 질문을 받는 셈이다. 이런 현실은 장기기증이 가능한 뇌사자 중 가족이 동의해 기증한 비율이 30%대에 머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생각지도 못한 사고로 뇌사에 빠진 젊은 아들의 장기기증을 결정했던 어머니는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장기기증 유가족들 상당수가 마음에 품고 있는 상처다. 이들을 위로하는 건 그 선택이 얼마나 큰 사랑의 실천이었는지 계속해서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뿐이다.
애초에 가족의 장기기증 결정 부담을 낮출 수 있다면 최선이다. 바로 할 수 있는 일은 장기기증 서약을 하고 그 사실을 가족과 공유하는 것이다. 남편의 장기기증을 결정했던 한 아내의 이야기다. “그때 너무 힘들었지만, 이젠 그 사람의 일부가 어딘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게 큰 위안입니다. 얼마나 값진 일인지도 느꼈기에 저도 장기기증 서약을 했습니다. 내 아이는 고민되지 않도록요.”
조민영 미션탐사부장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