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정통 관료 출신은 최규하 전 대통령뿐이다. 그것도 ‘박정희 대통령 시해~5공 정권 탄생’의 특수 상황 때문이지 권력 의지로 권좌에 오른 게 아니다. 탄핵된 윤석열 전 대통령도 사법고시를 거친 공무원 출신이나 검사의 길만 걸어 정책을 책임지는 순수 관료로 보긴 어렵다.
이웃 일본은 다르다. 과거 도쿄대를 나와 대장성 등 실세 부처 고위직에서 일하는 게 총리 코스로 통한 때가 많았다. 전후 일본 성장을 이끈 기시 노부스케, 이케다 하야토, 후쿠다 다케오 총리가 대표적이다. 일본은 관료가 국가를 이끈다는 자부심이, 우리는 관료가 대통령의 손발이 돼 정책을 펼친다는 사고가 차이라 한다.
대권에 본격 거론된 첫 관료가 고건 전 총리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로 두 달여 권한대행을 맡은 뒤부터 부각됐다. 탄핵 정국에서의 안정감 때문이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주자 선호도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들은 공직 세계와 다른 냉혹한 술수와 검증의 정치 생태계를 넘지 못했다. 고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의 “고씨 총리 기용은 실패한 인사”라는 공격에 주저앉았다. 반 전 총장은 친인척 검증 등으로 대선 행보 시작 20일 만에 하차했다.
‘한덕수 대망론’이 요새 화제다. 단순 설로 나돌다 지난 8일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2명을 불쑥 임명하면서 불이 지펴졌다. 한 대행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대선 출마 의향 질문에 “고민 중”이라고 답했다는 보도가 부채질을 했다. 호남 출신에 경제·외교를 섭렵한 공직 경력이 돋보이기 시작했다. 모 여론조사에서 한 대행이 국정 운영을 잘할 것이란 응답이 56%였다. 진영·증오 정치에 대한 환멸이 한덕수 대망론을 부른 듯하다. 하지만 글로벌 관세 전쟁과 국정공백기에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선에 나설 경우 논란도 적지 않을 터다. 대행 역할을 55년 공직의 마지막 소임이라 강조해 온 그다. 고건, 반기문의 길을 따를지 자못 궁금해진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