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정권 붕괴 후 흔들리던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의 리더십 불확실성이 해소됐다.
지난 2월 총선에서 제1당을 차지한 중도우파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이 중도좌파 사회민주당과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한 것이다. 양당의 대연정은 2021년 12월 이후 약 3년 반 만이다. 다음 달 총리 취임이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민당 대표는 유럽연합(EU)의 중심 국가로서 적극적인 대응을 강조했다.
도이체벨레 등에 따르면 메르츠 대표와 마르쿠스 죄더 기사당 대표, 자스키아 에스켄·라르스 클링바일 사민당 공동대표는 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독일에 대한 책임’이라는 제목의 연정 합의문을 발표했다.
144쪽 분량의 합의문에 따르면 차기 정부는 국방비 증액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자유무역과 이민 정책 강화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기민·기사당은 총리직을 포함해 외무부·내무부 등 9개 부처를, 사민당은 재무부·국방부를 비롯해 7개 부처를 맡는다. 이 합의안이 각 당에서 당원투표 등을 통해 추인받으면 메르츠는 5월 초 총리로 취임하게 될 전망이다.
지난 2월 총선에서 기민·기사당은 208석을, 사민당은 120석을 얻었다. 극우 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이 152 석으로 2당을 차지했기 때문에 기성 정당 중 연정을 구성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사실상 기민·기사당과 사민당의 연정 혹은 3당 이상의 연정뿐이었다.
애초 양측은 경제·난민 등 여러 이슈에서 정책 간극이 커 협상 장기화가 예상됐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전쟁과 러시아의 위협 증대가 압박으로 작용해 총선 후 45일 만에 협상이 타결됐다.
이는 2009년 연정 협상 이후 가장 빠른 속도다. 폴리티코는 “경제와 유럽 안보에 대한 이중 압박은 메르츠와 사민당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안정적 정부를 구성하라는 압력을 가중시켰다”고 분석했다.
메르츠는 “연정 합의는 국민과 유럽 동맹국들에 독일이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정부를 갖게 됐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에게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독일이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는 것”이라며 “EU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다시 EU의 가장 강력한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사민당에 지나치게 많은 양보를 했다는 보수 진영 내 불만은 차기 정부의 불안 요소로 지목된다. 특히 이로 인해 AfD가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 AfD는 이날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서 25%의 지지를 얻어 기민·기사당(24%)을 앞섰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