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선의 ‘디귿’ 자도 꺼내지 말라”고 일축한 이후로도 그를 향한 구(舊)여권의 대선 출마 요구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국민적 피로감을 낳은 극한 정쟁의 이미지가 옅고, ‘글로벌 관세전쟁’ 대응의 적임자라는 명분이 거론된다. 그러나 대선만 닥치면 당 외부에서 ‘용병’을 찾아온 국민의힘의 고질적 한계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 권한대행 주변 인사들의 전망은 ‘국정에 전념할 것’과 ‘깊이 고심할 것’으로 나뉘고 있다.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 의원 다수가 한 권한대행을 ‘최적의 카드’로 분류, 대선 출마를 권유 중인 것으로 10일 전해졌다. 그의 출마를 바라는 인사들은 경제·외교 분야에서 오래 일해 온 정통 관료로서 미국발 관세전쟁에 잘 대처할 것이라는 이유를 주로 말한다. ‘윤석열 대 이재명’식 정쟁이 연상되는 의미가 덜해진다는 점도 차별점이자 강점으로 꼽힌다고 한다.
국민의힘 호남지역 당협위원장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호남의 상징성과 국민통합의 메시지를 동시에 지닌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후보가 돼야 한다”며 “위대한 결단을 조속히 내려 달라”고 호소했다. 한 권한대행은 전북 전주 출신이다. 이들의 기자회견은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주선했으며 한 권한대행과의 교감 없이 이뤄졌다고 한다. 한 여권 관계자는 “한 권한대행을 적임자로 꼽는 이들은 많아지는 반면 ‘절대 안 된다’는 이들은 없다시피 하다”며 “약점이 있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한 권한대행이 급부상하는 현상은 뚜렷하다”고 말했다.
50년 관료였던 한 권한대행이 조기 대선 정국에서 주목받는 현상은 국민의힘 내부의 빈한한 현실을 방증한다는 평가다. 실제 당내에서는 ‘대망론’이 아니라 ‘용병 차출’에 불과하다는 자조도 나오고 있다. 대선만 다가오면 당이 키운 인재 대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윤석열 전 검찰총장 등을 찾던 구습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얘기다. 한 국민의힘 당직자는 “윤 전 대통령도 결국 ‘용병’이었으나 데려온 뒤에 관리하지 못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에게는 출마의 명분만큼 출마가 부적절한 이유도 다수 거론된다. 당내 일각에서는 “한 권한대행의 역할은 국정 안정인데, 만일 사직하고 선거에 나오면 그 역할은 포기되는 격”이라는 말이 나온다. 비록 비상계엄 선포를 반대했다지만 막지는 못했으며, 윤석열정부의 유일한 국무총리로서 실패의 책임을 공동 부담해야 한다는 여론도 존재한다. 한 권한대행에게 출마를 만류하는 취지의 연락도 다수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한 권한대행 재탄핵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내란수괴 대행’의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신중론 입장이던 중진들의 기류에도 변화가 생겼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MBC라디오에 나와 “만약 이분이 대선을 관리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많이 의심된다. 여기에서 배제해야 되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진행자가 구체적 의미를 묻자 정 의원은 “결국 탄핵밖에 없는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민주당 지도부는 재탄핵 추진을 공언하진 않았다. 한 권한대행에게 명분을 줄 ‘역풍’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의사결정이 이뤄진 시점은 아니다. 여러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구자창 송경모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