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가별 상호관세 적용을 90일간 전격 유예하면서 한국 정부에 협상의 ‘패키지 딜’을 준비할 여유가 생겼다. 여러 협상 의제를 어떤 식으로 풀어낼지 모색할 시간이 주어졌다는 평가다. 90일 이내에 조기 대선을 통해 리더십 공백을 해소할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는 점도 이점으로 꼽힌다.
복수의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10일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유예 조치에 대해 “한국에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며 “본격적인 협상 시점을 앞두고 의제들을 심사숙고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일(현지시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의 통화직후 언급한 ‘원스톱 쇼핑’(One-stop Shopping) 방식에는 다양한 현안이 포함되어 있다. 관세, 비관세장벽, 조선업 협력,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확대, 알래스카 투자, 방위비 분담금 등 여러 주제를 한 번에 논의하는 방식 자체는 효율적일 수 있으나 준비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은 한국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해 왔다.
특히 방위비 분담금이나 비관세장벽과 같은 사안은 부처 간 조율은 물론, 정부와 국회 간 협의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조선업 협력과 관련해서는 미국 측의 입장 파악부터 민간 기업과의 협의에 이르기까지 절차가 복잡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산 선박 구매를, 미 상무부는 미국 내 투자를 각각 언급하는 등 관련 메시지가 일치하지 않는 점도 혼란을 가중시켰다.
정부는 그동안 하루라도 빨리 협상에 나서야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압박을 받고 있었지만 이번 유예 조치로 부담이 크게 완화됐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미국 입장에서도 70여개국과 협상을 하려면 정신이 없을 텐데 내부적으로 조율할 시간이 생겼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오는 6월 3일 대선이 치러진다는 점도 한국에 유리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차기 정부가 일종의 협상 시한인 7월 초까지 시간을 두고 협상 카드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위비 분담금처럼 국회 협조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 안정적인 리더십을 기반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미국이 요구하는 비관세장벽이나 방위비 분담금 등은 행정부 단독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현 상황에서 성급하게 타결하면 이것저것 다 털릴 수 있다. 시간을 두고 충분히 종합적으로, 입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이의재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