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카뮈의 숙청은 실패했다

입력 2025-04-11 00:39

전후 부역자 청산 주장했지만
증오를 낳은 숙청은 추악했을 뿐

문재인정부 철저한 적폐청산도
국정농단 근본 원인 해결 못해

계엄 책임자 처벌해야 하지만
과거 잘못 되풀이하지 말아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일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프랑스 공화국은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카뮈.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다. 역사청산의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그들을 단죄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우리를 단죄하려 할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카뮈의 말이라고 알려진 문장이 인상적이었던 듯 정 의원은 거듭 인용했다. 이 문장은 보수든 진보든 반대편을 싹쓸이하고 싶을 때 즐겨 인용했던 문장인데, 정확한 출처는 없다.

프랑스 언론인 알베르 카뮈가 1944년 나치 독일에서 해방된 뒤 단호한 부역자 청산을 주장한 것은 맞는다.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던 ‘콩바(Combat)’ 신문에 45년 1월 11일 발표한 ‘정의와 자비’라는 사설이 유명하다. 그는 “오늘날 용서는 모욕”이고 “어떤 경우에도 용서는 우리의 소관 사항이 아니다”라면서 이렇게 썼다.

“(관용을 베풀자는) 그런 사랑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반역자와 하찮은 인간들의 나라, 우리가 더 이상 바라지 않는 사회이다.”

르피가로 신문의 가톨릭 언론인 프랑수아 모리아크는 카뮈의 숙청론을 비판했다. 그는 “숙청은 필요악”이라면서도 신중한 사실 확인과 정당한 재판, 그리고 용서와 자비에 기초할 것을 호소했다.

나치에서 해방된 프랑스에선 이런 일이 벌어졌다. 독일 군인과 동거하거나 사귄 여성 2만명이 삭발과 조리돌림을 당했다. 부역자 약식 재판으로 1만822명이 처형당했다. 그중 혐의가 확인되지 않은 사람이 1955명이었다. 전국작가회의는 12명의 처단 대상 작가 명단을 발표했는데, 명단은 한 달 사이에 158명으로 늘어났다.

보수 성향의 기자 앙리 베로는 나치 독일과 아무런 연관이 없었는데도 사형 판결을 받았다. 카뮈와 모리아크가 함께 탄원서를 쓴 젊은 문인 로베르 브리지아크에게는 사형이 집행됐고, 친독 매체 발행인이었으나 앙드레 말로 등 레지스탕스 작가들을 숨겨주었던 라 로셀은 자살했다.

‘정의와 자비’를 발표한 지 두 달 뒤인 그해 3월 15일 카뮈는 이렇게 토로했다.

“가해자들의 증오에 희생자들의 증오가 화답했다. 가해자들이 떠나자 프랑스인들은 다 써먹지 못한 증오를 지닌 채 남았다. 그들은 남은 분노를 가지고 여전히 서로를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8월 30일 그는 “프랑스에서 숙청은 실패했다”면서 “숙청은 추악한 것이 되고 말았다”고 선언했다.

1954년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 독립운동이 시작됐다. 프랑스와 알제리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알제리의 독립을 요구했으나, 정작 알제리 태생인 카뮈는 반대했다. 그는 알제리가 독립을 포기하고 프랑스 안에서 동등한 시민권을 가지고 공존하기를 요청했다. 전 세계에서 레지스탕스 문학인으로 추앙받는 카뮈이지만 고향 알제리에선 경멸의 대상인 이유다. 알제리는 1962년 독립했다.

역사학자들은 카뮈와 같은 프랑스 레지스탕스가 정작 알제리를 잔혹하게 탄압하는 데 동참한 이유를 ‘폭력에 익숙해진 문화’에서 찾고 있다. 해방 후 대규모 숙청 과정에서 프랑스 우월주의와 폭력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알제리 사람들을 탄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의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어떻게 정치 경력 하나 없이 당선됐는지 기억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문재인정부가 들어섰을 때도 지금처럼 ‘국정농단 세력의 발본색원, 철저한 적폐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문 정부는 국정과제 1호로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을 내세웠다. 검찰이 칼이었다. 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는 말단 공무원부터 대기업 직원들까지 뒤졌다. 수사 과정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윤석열 검찰총장은 영웅이 됐다. 그 와중에 국정농단의 근본 원인이었던 권력의 사유화, 정당의 사조직화, 취약한 민주주의 같은 문제는 고칠 기회를 놓쳤다.

윤석열정부에서 벌어진 12·3 계엄 사태는 법정의 심판대에 서 있다. 전말을 철저히 밝히고 책임자를 단호하게 처벌해야 한다. 국정의 혼란과 무능함 역시 선거를 통해 정치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증오와 폭력이 결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단죄와 청산, 모두 필요하지만 절제와 신중함이 요구된다.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청산이다.

김지방 디지털뉴스센터장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