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불신의 시대… 기독 지성 어록집 찾는 발길 부쩍

입력 2025-04-11 03:01
게티이미지뱅크

“끝없이 방황하고, 끝없이 멈추고 회의하지만 어느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원하는 땅, 세속적인 곳에선 몰랐던 새로운 땅에 도착한다. 믿는 자에게 중요한 건 아마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일 것이다. 이 귀중한 단어 하나 때문에 나는 다시 일어서서 외치는 돌이 되고자 했다.”(‘이어령의 말’ 중 ‘종교’)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둘 것인지 찾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힘들고 어렵다면 예수께 물어야 한다.”(‘행복은 인격만큼 누린다’ 중 ‘인생’)

갈등과 대립이 난무하고 확인되지 않은 가짜 정보가 혼란을 키운다. 불안이 일상이 된 시대에 한국인이 사랑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지성들의 어록집이 서점가에서 각광받고 있다. 수많은 명저 속 고갱이를 선별한 어록집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어서다.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문장을 모은 ‘이어령의 말’(세계사)과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잠언집 ‘행복은 인격만큼 누린다’(위더북)가 대표적이다.


두 책은 모두 주요 온라인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2월 출간한 ‘이어령의 말’은 4월 첫째 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종합 27위, 인문 부문 5위에 올랐다. 최근 출간된 ‘행복은 인격만큼 누린다’는 같은 기간 알라딘 명언·잠언록 부문 베스트셀러 12위를 차지했다.

저자들의 통찰력을 담아낸 두 책을 관통하는 주요 정서 중 하나는 ‘기독교 신앙’이다. “신과 생물의 중간자로 인간이 있기에 인간은 슬프고 교만한 존재” “세례란 가슴 깊이 묻혔던 온천수의 뜨거운 수맥을 퍼 올리는 것” 등 이어령 전 장관의 어록집엔 그 특유의 언어로 기독교와 인생의 본질을 꿰뚫는 단문이 여럿 실렸다. “재산은 내 인격의 수준만큼 필요한 것이지 그보다 많이 가지면 물질의 노예가 된다” “그리스도를 따라 사랑의 짐을 지는 사람이 하나님이 주는 행복을 얻는다” 등 신앙에 기반한 삶의 자세를 강조한 김형석 교수의 잠언도 깊은 울림을 준다.

어록집의 인기는 불확실한 시대에 현인의 언어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이어령의 말’을 펴낸 최동혁 세계사 대표는 1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어령 선생의 강렬한 아포리즘이 깊이 있는 사유를 찾는 젊은 세대에게 다가선 듯하다”며 “역사는 반복되기에 고전과 어른에게서 답을 찾으려는 심리”라고 분석했다. ‘행복은 인격만큼 누린다’를 편집한 남희경 두란노 출판1부장은 “정보가 지나치게 넘치는 시대일수록 그 기준이 되는 금언을 갈망하는 이들이 적잖다”며 “기독교인이 힘들 때 성경 말씀을 찾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최근 4~5세기 초기 기독교 성인의 이야기를 엮은 ‘사막 교부들의 금언록’(두란노)도 나왔다. 책에는 “위로의 말을 하는 자는 자신이 그 말의 첫 수혜자임을 생각하라” 등 지금도 새길 만한 명언이 가득하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