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백악관 목련

입력 2025-04-11 00:40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4월 25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방한하면서 두 가지 선물을 준비했다. 하나는 성조기이고, 다른 하나는 묘목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기 전 “이 성조기는 세월호 당일 백악관에 걸려 있던 성조기로 미국 국민을 대표해 대통령과 한국 국민에게 바칩니다”라며 성조기를 전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단원고에는 “세월호 사고로 목숨을 잃은 수백명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애도하며, 희생된 학생 대다수가 공부하던 고등학교에 ‘백악관 목련’의 묘목을 바칩니다”라는 위로를 담아 묘목을 건넸다. 백악관 목련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에 대한 위로의 뜻을 지녔다고 한다. 단원고는 이 묘목을 학교 정문 부근에 심었고 해마다 꽃을 피우고 있다.

백악관 목련은 ‘잭슨 목련(Jackson Magnolia)’이라고 불린다. 미국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이 대통령 취임을 불과 몇 달 앞두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내 레이철 잭슨 여사를 그리워하며 사저에 있던 것을 옮겨 1828년 백악관 뜰에 심었다. 목련은 아내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나무였다. 이 나무는 수많은 역사적 현장 사진의 배경으로 나오면서 백악관의 상징과 같은 존재가 됐다. 많은 미국 대통령이 이 나무에 정서적 의미를 부여했고, 1928∼1988년에는 20달러 지폐 뒷면에 이 나무가 등장하기도 했다. 미 국립공원관리청은 2006년 이 나무를 역사적 사건을 목격한 ‘증인 나무’로 지정했다.

200년 가까이 백악관의 상징으로 여겨진 이 나무가 9일 안전상의 이유로 제거됐다. 베어 낸 자리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슬로건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본떠 ‘마가놀리아’라고 명명된 새로운 목련 나무가 대신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나무를 심는 작업에 삽을 들고 참여했다. 이를 두고 미국 내에서는 “안전을 생각할 때 잘 베어 냈다” “트럼프가 역사를 파괴하려 한다”는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나무 이름에도 정치적 색채를 입히려는 트럼프의 뻔뻔함이 혀를 내두르게 한다.

김준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