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웅 “국민은 섬기는 대상… 궁궐도 국민 있어야 존재”

입력 2025-04-11 23:13
고선웅 서울시극단 단장은 오는 25일 서울 경복궁 흥례문광장에서 열리는 2025 궁중문화축전 개막제 연출을 맡았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계엄 선포를 보고 궁중문화축전 개막제의 주제가 떠올랐습니다. 국민은 위정자가 섬겨야 할 대상이라고요.”

오는 25일 서울 경복궁 흥례문광장에서 열리는 2025 궁중문화축전 개막제의 총감독은 연극계 스타 연출가인 고선웅 서울시극단 단장이 맡았다.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고선웅 감독은 ‘꽃이다’라는 개막제 주제에 대해 “그동안의 궁중문화축전 개막제는 대체로 광장에서 궁궐을 우러러보며 기리는 형태였다. 하지만 이번엔 방향을 반대로 바꿔 궁궐 밖을 바라보게 할 예정이다. 거기에 꽃, 즉 국민이 있기 때문에 문을 열어야 한다”면서 “궁궐 역시 국민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와 국가유산진흥원이 주최하는 궁중문화축전은 매년 봄과 가을에 경복궁·창덕궁·덕수궁·창경궁·경희궁 등 서울 5대 고궁과 종묘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 문화유산 축제다. 올해 궁중문화축전의 봄 행사는 25일부터 5월 4일까지 열린다. ‘고궁음악회-100인의 치세지음’ ‘고궁음악회-풍류에 정재를 더하다’ 등을 비롯해 역동적인 군무와 함께 펼쳐지는 ‘궁중문화축전 길놀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축제 기간 펼쳐진다.

2024년 궁중문화축전 개막제의 모습. 국가유산진흥원 제공

고 감독은 “‘왕은 백성의 바다에 뜬 배’라는 말이 있다. 바다는 배를 항구에 데려다주기도 하지만 전복시킬 수도 있다. 국민이야말로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을 권력자들이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계엄을 보고 정말 납득할 수가 없었다. 세상이 뒤숭숭한 요즘, 예술가로서 나름의 책임감을 가지고 이번 궁중문화축전 개막제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폐막식을 연출했던 고 감독은 당시 ‘꿈의 가능성들’이란 주제 아래 프로그램 간의 스토리텔링을 유려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번 궁중문화축전 개막제 역시 70분간 ‘꽃이다’라는 주제에 맞게 다양한 전통 공연들을 담았다. 제1경 기미, 제2경 개화, 제3경 만개, 제4경 완상으로 구성된 개막제는 궁중정재 외에 민속악도 많이 포함했다. 국립국악원, 국가유산진흥원 예술단, 서울시무용단,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등 국공립 예술단체와 함께 국악그룹 우리소리 바라지, 뮤지컬배우 김소현, 소리꾼 김준수 등이 출연한다.

그는 “야외 행사의 경우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현하기엔 현실적인 제약이 많다. 단순히 예산 문제만이 아니라 안전 등 기술적인 부분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라면서도 “주어진 여건 안에서 다채롭게 무대를 구성하려고 노력했다. 이번에 가장 아쉬운 것은 출연이 예정됐던 소리꾼 겸 작창가 한승석이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빠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 감독은 1999년 신춘문예에 희곡 ‘우울한 풍경 속의 여자’가 당선된 데 이어 연극 ‘락희맨쇼’의 작가로 정식 데뷔했다. 그리고 2002년엔 연극 ‘데미안’으로 연출 데뷔를 한 데 이어 2005년 극공작소 마방진을 창단했다. 그는 직접 쓰거나 각색하고 연출한 연극 ‘들소의 달’ ‘칼로 막베스’ ‘푸르른 날에’ ‘조씨고아’ 등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지난해 말 서울시극단에서 조선시대 소설 ‘최척전’을 각색하고 연출한 ‘퉁소소리’로는 최근 ‘2025 대한민국 국가브랜드대상’ 문화 분야 작품 부문 대상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그가 한승석과 짝을 이뤄 선보인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귀토’는 국립창극단의 르네상스를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흥미롭게도 전통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에서 그의 성공률은 매우 높다.

그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우리 것을 하는 게 편하고 좋다. 아무래도 창극을 하면서 전통과 많이 가까워졌다”면서 “요즘은 실험적이고 화려한 시도를 하기보다 무탈하게 흘러가듯 작업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면 힘을 뺀 편안한 작품이 나오면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웃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