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친구들이 싸우면 선생님이 둘을 불러서 화해를 시켰다. 서로 ‘미안하다’고 하라 하고, 악수하라고 하고, 포옹도 시켰다. 어색한 사과와 악수, 포옹이 이어지면 선생님은 화해를 선포했다. 그러면 억지스러운 평화가 이뤄지곤 했다. 아름다운 장면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폭력적이었다. 둘은 앙금이 지워지지 않았는데 제3의 폭력이 억지로 화해를 시켰다. 마음이 용서하고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 폭력이 무서워서 마지못해 한 화해였다. 그래서 누군가는 억울함에 울면서 화해를 했고, 누군가는 돌아서서 보복을 하기도 했다. 난 아직도 지난날 그런 화해의 악수를 수치로 기억하고 있다.
화해는 두 가지 국면이 있다. 하나는 잘잘못을 확인하는 정의의 국면이고, 다른 하나는 그를 받아들이는 용서의 국면이다. 사람들은 항상 극적인 용서를 원한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용납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화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용서가 허다한 죄를 덮는다 해도 그 죄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용서를 받은 죄인이 감동을 받아 다시는 그러한 죄를 짓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전설일 뿐이지 현실에서 그렇게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다. 대부분 용서가 죄에 대한 면죄부로 여겨질 뿐이다. 즉 그 정도의 죄는 벌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해 줄 뿐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통해 지난 시절 백인들이 저질렀던 범죄를 다 밝혔다. 그리고 그들을 용서하며 화해를 이뤘다. 독일은 통일 이후 동독의 정보기관이었던 슈타지의 행적을 철저히 밝혔다. 그리고 동·서독은 화해를 이뤘다.
한국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5·16 쿠데타가 있었고, 1980년 쿠데타도 있었다. 5·16은 역사가 흐른 뒤에도 단죄는 없었다. 쿠데타 주역이었던 김종필은 정치적 백수를 누렸고, 그 딸 박근혜는 아버지 후광으로 우리나라 첫 여성 대통령의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1980년의 주역들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명언을 만들어내고 재판을 받았으나 정치적 화해를 빌미로 나왔다. 그리고 60여 년이 지나, 40여 년이 지나 이 땅에서는 또 다른 쿠데타가 시도됐다.
지나서 보니 지난해 있었던 쿠데타는 참 허망했다. 그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자신들이 쿠데타를 했다면 그렇게 허술하게 했겠냐고, 또 그렇게 한다고 요즘 젊은이들이 따르겠냐고 생각했다는 건데, 그냥 그렇게 밀어붙인 것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 성공하지도 못한 쿠데타인데 왜 처벌하려 하냐고, 큰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경계하고 계몽하려던 것일 뿐인데 왜 그러냐고 한다. 아마 그들에게는 한 번 해봄 직한 일이었던 듯하다. 역사가 그렇게 가르쳐줬기 때문이리라.
탄핵이 인용되던 날 뉴스를 보다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탄핵을 찬성했던 어떤 분이 인터뷰에서 ‘우리가 이겼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서 우리는 누구인지, 우리가 누구를 이겼다는 건지, 이런 상처를 안고 이겼다는 표현이 맞는 건지 상당히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정말 이 사회에 통합은 절체절명의 문제가 됐다. 이렇게 분열돼서는 국가의 힘도 문제지만 개인들의 깨어진 일상도 편하지 않다. 나라가 하나가 되는 것 까지는 아니어도 평안할 수는 있어야 한다. 광장에 나가 소리를 질러야 나라가 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그러나 도덕군자처럼 무조건 화해하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분명 잘잘못은 정확히 따지고,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쐐기를 박아야 한다. 그리고 화해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 사랑을 더해야 한다. 그게 예수님이 가르쳐 준 길이지 않은가.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 목회사회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