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기간입니다. 사순절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처절한 고난을 묵상하는 가운데 깊은 성찰과 획기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또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기다리는 축복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본문은 ‘비천한 가운데 기억해 주시는 은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편 136편은 유대인들의 3대 절기인 유월절 칠칠절 장막절에 드리는 ‘큰 찬양시’입니다. 26절까지 절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는 찬양이 담겨 있습니다. 창조와 구원, 기이한 이적을 노래하는 이 시편에서 23절은 어쩌면 생소한 고백인 비천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 말씀 ‘우리를’이란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택한 민족(選民)과 거룩한 민족(聖民)을 뜻합니다. 선민과 성민은 신구약을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과 믿음의 역동성을 밝혀주는 구별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그 영광스러운 선민과 성민이 치욕적이게도 비천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는 40년간의 광야생활, 70년간의 포로생활, 갖은 핍박과 설움을 당하는 공동체를 말합니다. 그리고 구속사로 보면 하늘나라에서 버림받은 처절한 죄인을 뜻합니다.
찬란한 내일을 꿈꾸던 요셉은 애굽의 감옥에 갇히는 비천한 존재로 전락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제국의 총리가 되는 길이 열립니다. 감옥의 비천함이 없었다면 총리의 영광, 민족 번영을 마련하는 역사적 업적도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제국의 왕자에서 미디안광야로 도피하는 존재로 전락, 40년간 양치기로 삽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 사명을 받고 십계명을 받은 영광스러운 성직자가 됩니다. 호렙산(시내산)은 비천한 양치기가 거닐던 현장이었습니다. 모세는 특히 광야에서 ‘양치기 리더십’을 수련 후에 이스라엘 백성을 질서 있게 인도할 수 있는 결정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존재로 전락하신 분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십자가의 비천함이 없었으면 영원한 구원도, 영광스러운 부활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9)
스위스 신학자 에밀 브루너는 말합니다. “십자가는 우주의 중심이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비천한 상태로 유배당했고 거기서 종말의 신비한 계시록을 받습니다. 민족의 개혁을 꿈꾸던 정약용도 강진으로 비천하게 유배된 다음 ‘목민심서’를 씁니다. 부채를 떠안은 채 치명적 마비 증세를 앓으면서 구금상태로 지내던 헨델은 세기적 명곡을 창작합니다. 영광의 메시아, 할렐루야 대합창은 비천한 상태에서 이뤄졌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통령 파면 정국으로 비천한 가운데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비천한 상황에서 고통당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고난의 섭리를 깨달으며 영원한 주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봅시다.
비천함에 섭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하고 찬양하는 은총의 사순절을 보냅시다. 석탄이 변해 다이아몬드가 됩니다. 비 온 뒤 무지개가 뜹니다. 크로스(십자가)없이 크라운(면류관)도 없습니다. 그 인자하심만이 소망입니다.
김상길 화도평강순복음교회 목사
◇지난달 16일 창립한 경기도 남양주 화도평강순복음교회는 한 영혼 한 영혼의 구원과 회복, 역동적인 믿음으로 삶의 변화에 집중하는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특히 가구단지와 복합지역을 약속의 땅으로 가꿔,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미래를 꿈꾸며 오늘도 행복한 증인으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