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듀크대의 구약학자 엘런 데이비스가 쓴 이 책은 원로 학자의 특별 강연을 듣는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35년간의 연구 경력으로 축적한 통찰력이 응축된 책은 방대한 히브리 성서의 숲에서 길을 잃기 쉬운 독자를 위한 친절한 지도다. 하지만 그 접근 방식은 결코 관습적이지 않다. 히브리 성서의 전통적 순서를 기본 틀로 삼으면서도 이를 창의적으로 재배열한다. 사사기와 룻기를 나란히 놓아 성경 간 대화를 포착하고 욥기와 아가서 같은 지혜문학을 함께 읽음으로써 텍스트 간 새로운 연결고리를 발견하도록 유도하는 식이다. 표면적으로는 성경 순서를 따르는 듯하지만 그 아래엔 역사적 맥락을 섬세하게 고려한 배치가 자리하고 있다.
책의 가장 두드러진 미덕은 세 가지 차원으로 발견된다. 첫째 저자는 학문적 엄밀함과 신앙적 성찰 사이의 인위적 경계를 무너뜨린다. 현대 성서학계에서 종종 분리되는 역사비평 접근과 신학적 해석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본문에 대한 더 풍부하고 입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그의 분석은 학술적 정확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영적 깊이를 포기하지 않는 희귀한 균형감을 보여준다.
둘째 그의 해석학적 지평은 놀랍도록 포용적이다. 유대교 랍비 전통과 그리스도교 교부의 해석을 자연스럽게 오간다. 아프리카 수단과 동아프리카의 독서 공동체가 성서 텍스트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도 탐색한다. 이런 접근은 독자가 익숙한 본문을 새로운 렌즈로 바라보게 한다. 저자는 성서 해석이 단일한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다양한 맥락과 관점이 서로 대화하는 풍요로운 장이라는 걸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셋째로 저자는 학문의 상아탑과 삶의 현장 사이의 거리를 좁힌다. 서론에서 저자는 다수의 성서학자가 본문 의미 분석에만 매몰돼 실천적 적용을 간과하는 경향을 지적한다. 그의 분석 지향점은 항상 현대 독자의 삶과 신앙에 텍스트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향한다. 이는 텍스트의 깊은 신학적 의미가 오늘날 맥락에서 어떤 울림을 가질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모색하는 작업이다.
책은 성서학자와 신학생에겐 방법론적 영감을, 목회자에겐 설교와 가르침을 위한 풍부한 자원을 제공한다. 일반 독자에겐 구약성서의 복잡한 세계로 들어가는 안내서가 돼 줄 것이다. 성서의 깊이와 풍요로움을 경험하고 싶은 모든 이에게 진심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