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방위비 압박하는 美… 인상 땐 추가 군사지원 얻어내야

입력 2025-04-10 02:1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 에너지 활성화 행정명령 서명식’ 행사에 참석한 탄광 노동자들 앞에서 알통을 키우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의 통화에서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 안보 사안과 상호관세 등 경제 사안을 연계해 협상할 뜻을 밝히면서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이 미국의 안보 지원 의존도가 높은 상황임을 건드리며 ‘관세율 하향 등을 원하면 방위비 분담금은 양보하라’는 압박을 노골적으로 던졌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내줄 것과 지킬 것을 우선순위에 따라 구분하고, 추가적인 군사 지원 등의 구체적인 반대급부를 얻어내는 실익 중심의 협상을 진행하라고 조언했다.

트럼프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지목하며 ‘원스톱 쇼핑’(포괄 협상)을 언급한 것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나왔다. 상호관세는 결국 방위비 증액,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구매, 알래스카 가스관 사업 참여 등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여러 ‘딜’의 관철을 위한 지렛대 성격임을 자인했다는 취지다.

트럼프는 특히 방위비 분담금을 “우리가 한국에 제공하는 대규모 군사 보호에 대한 지불”이라고 규정하면서 자신의 1기 때 협상도 언급했다. 한국은 2018년 방위비로 9602억원을 부담했지만 이듬해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첫 해에는 1조389억원을 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50억 달러(약 7조원)를 요구했었다. 앞서 한·미는 지난해 10월 2026년부터 적용되는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도 대비 8.3% 인상한 1조5192억원으로 합의했다. 트럼프가 1기 때 요구한 금액에도 못 미친다.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 때 한국을 ‘머니 머신’(현금인출기)으로 부르며 100억 달러(약 14조8000억원)를 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는 트럼프가 가장 원하는 것으로 어떻게든 더 많이 받아내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정부는 꾸준한 방위비 증액을 통해 주한미군의 안정적 유지와 한·미 연합 방위태세 강화에 기여해 왔다”며 “미국 측에도 이를 적극 설명하고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국이 미국 경제 성장 등에 그간 크게 기여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부각하는 전략을 쓰면서 합리적인 절충 수준을 찾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방위비 재협상은 불가피한 상황인 만큼 반대급부를 얻어내는 실익 전략을 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의 추가적인 군사 지원이나 한·미 연합훈련 강화 등 반대급부를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이나 알래스카 가스관 사업 등과 연계해 포괄적인 협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관세율 조정을 위해 방위비 분담금을 양보하는 방안에 대해 “관세와 방위비만 패키지라는 것은 아니다. 조선·LNG·무역균형 등 경제통상 관계가 패키지로 엮여서 관세와 협상이 된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지 박준상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