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OO교회에 좌파 목사가 한 명도 남지 않을 때까지 싸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자기가 속한 교회에서 계속 싸워 주십시오.” 구독자 수 10만명인 한 기독 유튜버는 최근 인천의 한 교회 담임인 A목사 등 교역자와 장로를 ‘공산주의자’라고 저격했다. 이 교회 소모임의 한 리더가 교역자에 제기한 관련 문제에 별다른 해명이 없었고, 자신이 탈퇴한 소모임 SNS 단체방에 재가입이 안 된다는 것을 문제 삼아 유튜버에게 한 제보가 근거였다. 이 영상에 달린 800개에 가까운 댓글은 찬반으로 나뉘어 감정싸움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연말부터 이어진 탄핵 정국이 지난 4일 헌법재판관 8명 전원일치 탄핵 인용으로 막을 내렸지만 그간의 갈등에 따른 교회 내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온라인상에서 A목사와 관련한 영상처럼 다른 견해를 가진 상대를 적으로 만드는 행태는 여전히 포착되고, 교회 성도들이 서로 반목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안팎의 갈등과 흔듦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성도들을 다독이며 걸어온 교회들도 있다. 조기 대선으로 당분간 비슷한 갈등이 반복될 가능성이 큰 가운데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안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걸어갈 지혜를 찾아본다.
음해 시달렸던 목사들 “성도 떠나기도”
국내 한 교단의 고위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이들이 주일에 같은 예배당에 앉아 같은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며 “목사에게 ‘대체 어느 편이냐’고 질문하고 답하길 강요하는 성도도 적지 않다. 목회하기 어렵다는 푸념이 상당하다”고 걱정했다. 목회자들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밑도 끝도 없는 음해성 공격이다. 일부 교계 인사가 주도하는 탄핵 반대 집회를 ‘반대한다’는 식의 비난을 받는 게 대표적이다. 일부 발언을 곡해하거나 하지 않은 말이 퍼지기도 했다.
에스겔선교회의 김동호 목사는 헌법재판소(헌재) 탄핵 심판 선고 이전인 지난달 25일 국론 분열을 걱정하는 글을 SNS에 올렸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이번 탄핵 정국과 관련해 정치적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는 취지의 말 때문이었다. 김 목사는 “요즘 시국처럼 국론이 양쪽으로 팽팽하게 갈려 있는 때에는 말을 해도 말을 안 한다고 욕을 먹고 말을 하면 왜 그렇게 말을 하느냐고 욕을 먹는 세상”이라고 한탄했다. 이 글에는 “공감한다” “비겁하다”는 서로 다른 반응으로 난장판이 됐다.
이찬수 분당우리교회 목사도 지난달 23일 설교에서 자신을 향한 가짜뉴스 때문에 성도가 떠나갔다는 소문을 듣고 곤혹스러웠다고 털어놨다. 그가 이전 설교에서 ‘지금은 각자의 판단을 유보하고 기도할 때’라는 취지로 한 말을 두고 일부 유튜버들이 정치 편향적이라며 공격한 뒤였다. 이 목사는 당시 “각자의 생각과 정치적 법적 판단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고 해명했으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다름을 인정하고, 상처는 치유하고
그러나 이런 갈등 속을 의연히 걸어온 교회와 목회자들도 적지 않다. 이 목사도 한때 가짜뉴스를 퍼트린 유튜버에게 법적 대응을 고려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보듬는 것이 예수의 뜻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은 ‘서로 사랑하라’를 실천할 때 드러난다”며 “이 시대 정치적 갈등으로 상처받은 국민의 아픔을 보듬고 치유하는 일에 기독교인들이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중형교회는 탄핵 정국을 지나며 오래된 2명의 교인이 공동체를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아무 말 없이 떠났지만 교회의 정치적 성향에 차이를 느낀다는 말을 가까운 이들에게 털어놨다고 한다. B담임목사는 시국과 관련한 설교를 한 적은 없지만, 3월 말 주보 칼럼에서 두 쪽으로 나뉜 한국 교계를 걱정하며 ‘일부 교계 인사들이 이념을 신앙화하고 정치를 우상화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었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교회는 다양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모인 공동체인 만큼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일이 교회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면서 “정치적으론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대신 신앙적으론 같은 마음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꾸준히 상기시키려 한다”고 했다.
극단적인 정치적 행동에 대해서는 목회자가 분명히 선을 그음으로써 중심을 잡는 방법을 택한 교회도 있다. 서울 마포구의 나눔교회는 정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던 3월 초 탄핵 관련한 집회에 대해 정치적 목적이 분명하다는 당회 결정을 주보를 통해 공지했다. 이런 교회의 입장 표명에 대해 일부 성도가 불편한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조영민 담임목사는 그러나 “집회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교회로서 긁어 부스럼일 수는 있지만, 성도를 지켜야 할 당회 의무를 저버릴 순 없었다”고 설명했다. 조 목사는 대신 지난 4일 헌재 선고 후 소그룹 리더들에게 정치 사안에 있어 감정 표현을 자제할 것을 주문했다. 헌재 결론에 상처받은 이들이 교회 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조 목사는 “정치적 관점은 교회 내에서 편을 가르는 주제가 될 수 없다. 교회가 복음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사고하는 곳이라는 합의가 있을 때 성도가 하나로 화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경기도 용인의 한 중형교회는 뒷말로 하던 정치적 논쟁을 공개 토론의 장으로 꺼내는 방식으로 정면승부한 경우다. 이 교회 안에도 탄핵 선고에 환영하는 이와 충격을 받았다는 성도가 각각 상당할 정도로 서로 다른 정치 성향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구역예배나 소모임에서 정치적 사안을 두고 대화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C담임목사는 헌재 선고 직후 주일인 지난 6일 “하나님은 지금의 이 현상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판을 바꾸고 한국교회를 새롭게 기경하실 것”이라고 설교했다. 이 교회에선 2년 전 성도 간의 정치입장 차이로 갈등을 겪은 경험이 약이 됐다. 당시 한쪽에선 ‘왜 목사님은 (우리 측) 집회에 나가지 않느냐’는 비판이, 반대에선 ‘목사님이 그들을 방관한다’는 원망이 나왔다. 몇몇 성도는 교회를 떠나기도 했다. C목사는 이런 비판에 의연히 대했다. 그는 “성도는 학연 지연 정치선호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거룩함만 쫓아야 한다는 설교를 끊임없이 했다. 그리고 정치 이야기를 하고픈 성도를 목양실로 초대해 허심탄회하게 토론했다”고 했다. 성도에게 반대쪽 정치 집회에 직접 나가보라고 권한 적도 있다. “현장 목소리를 들어보고 한쪽에만 함몰되지 말라는 취지였다”고 했다.
갈등 겪은 한국교회, 후유증 극복 위해
한국교회는 지난 탄핵 국면을 지나며 입장이 다른 상대를 적으로 몰아세우고 극단적인 대립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보통의 기독교인은 그런 상황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다.
그 과정에서 생긴 ‘탄핵 후유증’에 대해 교회가 절실히 고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박욱주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11일 “1차 세계대전을 개시한 독일 황제를 지지한 신학자와 확실한 선을 그었던 칼 바르트, 나치 정권을 따른 교회를 배격한 디트리히 본회퍼 등 신학적 역사에서 오늘날 한국 정치 현실을 바라보는 적합한 성경적, 신학적 지혜를 찾아 전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목회자와 리더들은 정치 갈등의 진흙탕에서 사람들을 건져내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영훈 성결대 문화선교학과 교수도 “교회는 어느 쪽 편을 드는 것이 아닌, 양쪽을 아울러 화해시키고 성도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가오는 부활절에 새롭게 태어나는 한국에 대한 기대를 담거나 가정의 달인 5월 정치를 초월할 수 있는 가족애를 드러내는 행사를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윤 교수는 “비상계엄과 탄핵 과정에서 기독교가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다는 점에 매몰돼 이를 급하게 만회하려 나서기보다는 사랑과 은총 평화 등 본연적인 것에 대해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박 교수도 “교회가 가장 기독교적인 본질과 신앙 공동체로서의 중심기능을 발현하면서 자기를 성찰하고 이웃을 보듬고 돌보는 원래의 기능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신은정 양민경 최기영 조승현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