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민족 인공지능(AI) 시스템이 도마에 올랐다. 오류가 잦고 모호한 기준으로 메뉴 등록마저 어렵게 만들면서다. 일부 메뉴명을 입력조차 못 하게 하는 ‘헛똑똑이’ AI 시스템이 자영업자들의 불편만 고조시킨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올린 기업이 점주와의 상생에 무관심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9일 국민일보 취재에 따르면 경기도에서 카페를 운영 중인 30대 정모씨는 최근 배민으로부터 무려 15개 메뉴명에 대한 수정 요청을 받았다. ‘(ICE) 그린티라떼’의 괄호 모양이 문제가 되니 아예 없애거나 ‘[ICE]’처럼 다른 모양의 괄호로 바꾸라는 요구였다. 정씨는 왜 문제가 되는지 궁금했으나 배민 측은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수정 혹은 삭제 조치 될 것”이라는 공지만 반복했다. 배민 관계자는 뒤늦게 “해당 메뉴명에는 문제가 없다”며 “시스템 고도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정씨 사례뿐 아니다.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한 점주는 “정확한 표기인 ‘그래놀라’를 ‘그래놀놀라’로 바꾸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황당해 했다. 또 다른 점주는 “사이다를 ‘사이즈’로, ‘핫윙봉’을 ‘윙봉’으로 바꾸라는 수정 요청이 왔다”고 말했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요구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영업자 사이에선 “주인이 메뉴 하나 맘대로 정할 수 없다”며 자율성과 창의성까지 침해당한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일관성이 없어서 혼란을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에서 도넛 가게를 운영 중인 A씨는 “본점에서 쓰는 메뉴명을 그대로 가져다 썼는데도 우리 매장만 삭제를 당했다”며 “배민의 기준이 매번 다르게 적용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점주들 입장에서 납득이 어려운 제한도 적잖다. 예컨대 대표메뉴를 의미하는 ‘시그니처’라는 단어도 배민의 ‘제재 대상’에 포함돼 있다. 배민 측은 플랫폼 내에 대표 메뉴를 따로 지정할 수 있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일반 메뉴명에 ‘시그니처’라는 표현이 포함되면 시스템상 중복 인식이나 검색 누락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승인 요청을 통해 허용되기도 한다. 입점업체 점주들은 “인기 메뉴 하나를 등록하려 해도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하느냐”며 피로감을 호소한다.
배민은 ‘판매 가능 메뉴에 해당하지 않는 항목에 대해서는 등록을 제한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홍보성 문구, 과도한 연출, 신조어, 음식과 무관한 표현 등을 금지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 제일 맛있는 찜닭’과 같은 표현조차 제한되는 데 대해서는 과도한 규제로 지적된다. 콘텐츠를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앞세운 식당은 운영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배달업계 한 관계자는 “메뉴명이라는 건 언어적 맥락과 브랜드 정체성이 담긴 표현 영역”이라며 “‘합법적인 창의성’과 ‘불법적인 과장’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