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기 탓?… 호실적에도 웃지 못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입력 2025-04-10 00:15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전자 부품 업계가 1분기 예상보다 좋은 실적에도 웃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상호관세를 부과하기 전에 고객사들이 부품을 ‘사재기’한 영향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2분기 이후 물량이 1분기에 집중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 업계는 2분기 이후 실적이 꺾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9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1분기 반도체(DS) 부문에서 1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고객사들이 관세 부과 이전에 범용 D램을 미리 주문한 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D램 가격이 최근 오르고 있는데, 가수요 때문에 가격이 오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며 “반도체가 사이클을 탔다기보다는 관세 영향으로 수요가 늘어났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보다 범용 D램이 관세 충격에 취약하다는 점도 걱정을 키우는 요인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D램 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를 제치고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HBM 수요가 늘어나면서 시장 후발주자인 삼성전자가 전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내주는 모습이다. 황민성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는 인공지능(AI) 수요가 강세를 유지하며 HBM은 관세 충격에 영향을 덜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디스플레이 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시장에서는 LG디스플레이가 1분기 흑자 전환하고, 삼성디스플레이는 5000억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거뒀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대형 패널과 애플 아이폰 16e 신제품 효과, 삼성디스플레이는 갤럭시 S25 시리즈 판매 호조가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2분기 이후다. 관세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으면 전방위적 소비 위축이 일어날 수 있다. 관세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제품 가격이 상승하면 소비가 둔화하고, 세계 경기가 얼어붙어 업계 전반으로 불황이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로 미국 소비재 가격이 오르면 기업들이 전 세계적으로도 가격 정책을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