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상호 관세가 발효되면서 주요 정보기술(IT) 완제품의 가격 상승으로 수요가 둔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의미한 관세 협상 결과가 나오지 않는 한 세계 각국에서 스마트폰, IT 제품 및 부품을 주력 생산·판매하는 한국 기업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국내 기업은 당장 공급망을 조정하기보다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9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조치에 따라 올해 스마트폰, 노트북, 서버 등의 IT 완성품의 시장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 관세 여파로 최종 제품 가격이 올라 인플레이션이 악화되고, 경기 침체로 수요가 줄어들면 출하량이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스마트폰 출하량은 미국이 예외 없이 국가별 관세를 부과하면 전년 대비 5% 감소하며 역성장할 것으로 트렌드포스는 예측했다. 기존 전망치는 1.5% 상승이었다. 애플 등 미국 주요 기업이 관세 면제를 받을 시에는 0% 성장으로 예상됐다. 노트북 출하량은 기존 5%에서 관세 강행 시 2%로 증가율을 하향 전망했다.
기업간거래(B2B) 품목인 서버도 예상보다 수요가 줄어들 전망이다. 트렌드포스는 일반 서버는 출하량 증가율이 6.9%에서 최대 2.0%로, 인공지능(AI)용 서버 출하량의 경우 28.3%에서 18.0%까지 성장폭이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사(CSP) 등이 경기 침체가 심화되면 서버에 대한 투자를 줄일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만약 반도체까지 관세가 확대될 경우 서버의 전반적인 비용 상승이 발생할 수도 있다. 트렌드포스는 “스마트폰과 서버의 1분기 출하량이 증가했던 건 기업들이 관세 적용 전 미국에서 제품 출하를 늘렸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가격 상승이 예상되는 이유는 애플, 삼성전자 등 주요 스마트폰·IT 기기 제조사의 생산 기지가 고율의 관세가 매겨진 중국, 베트남, 태국 등에 있기 때문이다. LG전자도 노트북과 가전, TV 등을 베트남을 비롯해 여러 국가에서 생산하고 있다. 전자제품 제조사들이 가격을 올리기 전 부품 업체들에게 단가 인하를 압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을 통한 관세 조정 가능성을 내비친 만큼, 기업들은 우선 상황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파악할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불확실성이 커 공급망 재편이나 가격 조정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건 섣부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기업들도 큰 타격을 입는 구조인 관세 조치가 그대로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가 여러 변수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두고 가격과 수요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각국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하려는 전략이기 때문에 한국 외교·통상 라인이 발 빠르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