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 그때, 인생의 스위치를 켜준 스승

입력 2025-04-10 23:42
‘머니볼’의 저자 마이클 루이스는 어떠한 열정도 없는 무기력한 아이였다. 10대 시절 인생의 참스승을 만나 인생의 스위치가 켜진다. 야구부 감독이던 빌리 피츠제럴드였다. 책은 인생의 전환점이 된 만남을 이야기한다. 미국 뉴올리언스의 뉴먼 스쿨 야구부의 투수로 활약하던 마이클 루이스(왼쪽 사진)와 그의 스승 빌리 피츠제럴드. 모로 제공·ⓒTabitha Soren

영화로도 만들어져 더욱 유명해진 ‘머니볼’의 저자 마이클 루이스의 10대는 어떠한 열정도 없이 무기력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과 싸웠고, 학교 밖에서는 시간을 낭비할 방법만 찾아다녔다. 그렇다고 세상을 탓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더욱 문제였다. 그는 그 시절을 회상한다. “나의 나빴던 점은 내가 너무나 훌륭하고 사랑스러운 부모님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당신들 때문이라고 비난할 사람조차 없었다. 그럼 나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알 수가 없었다.” 그에게 “열두 살은 나이라기보다는 질병이었다.”

루이스가 쓴 작지만 강렬한 책은 무기력한 아이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준 한 남자와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빌리 피츠제럴드. 저자가 다니던 학교의 야구부 감독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피츠로 불렀다. 언제나 열정이 넘쳤고 목표를 향해서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 사람이었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2등”이라며 준우승 트로피를 부쉈고, 슬라이딩 연습으로 찢어지고 더러워진 유니폼은 “이길 때까지” 빨지 못하게 했다. “빛을 내려면 타오르는 것을 견뎌야 한다”(빅터 프랭클) 등의 명언을 들려주며 선수들의 영혼을 깨웠다. 피츠가 선수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건 “포기하자고 속삭이는 안일한 핑계와 맞서 싸우는 것의 중요성”이었다.

저자는 피츠를 만난 이후 “어떤 스위치가 켜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신체적 조건도 그렇고 야구에도 흥미가 없이 더그아웃만 지키는 투수였던 저자는 어느 날 팀이 2대 1로 앞선 9회말 1아웃 주자 1·3루의 긴박한 상황에서 피츠의 부름을 받는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내보낼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야.” 피츠는 그를 믿었다. 결과는 승리였다.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설명하기 힘든 느낌을 또렷이 기억한다. ‘당시의 나’는 “세상과 나 자신에게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주려고 하고 있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후 야구에 흥미를 느끼게 됐지만 ‘열정의 스위치’가 켜진 순간은 따로 있었다. 일주일간의 연휴 기간, 저자는 훈련에 빠지고 가족과 스키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후 처음 마운드에 올랐을 때 피츠는 큰 소리로 “마이클 루이스는 연휴 동안 어디 있었지?” “다들 훈련하고 있었는데 마이클 루이스는 어디 있었지?”라고 외쳤다. 그 순간 타자의 강한 타구에 얼굴을 정면으로 맞아 코뼈가 다섯 군데나 부러지면서 의식을 잃었다. 치료를 받으러 병원으로 가는 동안 그는 엄마에게 “스키를 타러 가든, 놀러 가든 이제 나는 절대 안 가”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열정적인 사람이 돼 있었다. 나머지 시즌 내내 보호 마스크를 쓰고 마운드에 올랐다는 저자는 “그때만큼이나 목적의식이 충만했던 때는 없었다”고 한다. 그는 “야구에서 얻은 열정을 내 삶의 나머지 부분에도 적용하면 인생이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책이 쓰인 2005년 무렵, 저자는 피츠에 관한 두 가지 모순된 소식을 접한다. 하나는 피츠가 가르친 제자 한 명이 오래된 체육관 건물을 허물고 ‘피츠’라는 이름을 붙여 다시 짓겠다고 나선 것이다. 다른 소식은 현재 야구팀 선수의 부모들이 피츠를 쫓아내기 위해 교장을 설득하는 상황이었다. 과거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피츠가 내 인생을 바꿨다”고 말하고 있지만 현재의 제자들은 힘든 훈련에 투덜댔고 그 부모들은 아이들을 과보호했다.

저자는 과거와 현재가 불화를 겪는 상황에서 느끼는 두려움을 말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혹시라도 내 아이들이 그들만의 피츠를 만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아니면 만나게 되더라도 내가 그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