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미국의 상호관세가 공식 발효됐다. 우리나라는 25%의 세금을 더 내고 미국에 물건을 팔아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제는 우리가 갈취할 차례”라며 상호관세 부과를 자축한 가운데 중국에 수입 금지에 가까운 104%의 관세를 매기는 등 관세전쟁의 고삐를 계속 죌 태세다. 교역 대상국 1·2위 간 강대강 관세 전쟁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한국은 미·중의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크게 터질 경제 구조를 갖고 있다. 지난해 성장률 2%의 기여도를 보면 순수출(수출-수입)이 1.9% 포인트, 내수가 0.1% 포인트다. 즉 지난해 성장의 95%는 수출 덕이라는 얘기다. 특히 미·중 대상 수출은 전체의 40%나 된다. 한국은 미국으로 수출되는 중국 제품의 중간재를 상당 부분 담당한다. 미국의 대한국 관세와 대중 관세가 동시에 우리 수출에 영향을 주기에 관세전쟁의 가장 취약한 고리가 되고 있다. 외국인의 자본 이탈이 이를 증명한다.
9일 원·달러 환율은 1484.1원으로 마감해 금융위기 이후 16년여 만에 최고치였다. 올해 들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가 6.7% 떨어진 반면, 원화 가치는 이런 달러에 비해서도 15원가량 떨어졌다. 나홀로 통화 약세는 외풍에 약한 한국 경제의 실상을 여지 없이 드러냈다고 봐야 한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최근 9거래일 연속 10조원가량 매도해 주가지수가 2300선 밑으로 추락했다. 한국의 신용위험도를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23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각종 지표를 보면 외환위기,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심각한 상황이 우리 경제 앞에 놓여 있다.
우리 경제 난맥상을 단숨에 해결할 묘안은 없겠으나 우선은 미국과의 협상을 서둘러 관세 리스크의 예봉을 피하는 것부터 풀어가야 한다. 지난 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를 계기로 한·미 정상 협상이 늦게나마 시동이 걸린 건 다행이다. 다음 달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의 방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데 미국 경제에 대한 한국의 기여와 협력을 적극 알릴 필요가 있다. 수출 다변화, 구조 개혁, 신성장동력 확보 등 한국 경제 도약을 위한 장기 과제를 넘으려면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벌써부터 조기 대선의 극한 대결 조짐이 보여 걱정이다. 국난 극복을 위해선 탄핵의 강을 건너 국민 통합이 필요한 때다. 미증유의 경제 위기를 극복할 비전과 정책 제시가 요즘처럼 간절할 때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