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고물가 장기화로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한계 상황에 내몰리는 저신용·저소득층이 늘고 있다. 취약계층의 대출 수요는 늘어난 반면 서민금융사라 할 수 있는 상호금융 등은 리스크 관리를 이유로 공급을 줄이면서 저신용·저소득층의 금융 부담도 커지고 있다. 이는 다중채무와 연체율 증가로 이어지고, 리스크 확대로 서민금융 공급이 줄어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한국금융연구원 시절부터 서민금융·채무조정 연구를 한 이재연 서민금융진흥원장은 제도권 아래서 금융 지원을 받는 취약계층을 약 100만명으로 추산했다. 지원을 못 받는 이는 300만명으로 예상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에서 만난 이 원장은 “정책금융만으로는 넘쳐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며 “정책금융은 일종의 사회안전망으로, 민간에서 서민금융 상당 부분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2년 1월 취임 이후 3년여 동안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접했을 것 같다.
“소득 감소, 갑작스러운 사고, 건강 악화 등 돌발적인 상황에서 모아놓은 자금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았다. 50만원이라는 소액조차 빌리기 어려운 분도 많더라. 연체자들은 대출을 받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들에게 대출을 해준 게 2023년 3월 출시한 불법사금융예방대출(예전 소액생계비대출)이다. 지금까지 총 34만6000건, 1941억원을 지원했는데 이용자의 92.4%가 신용평점 하위 10% 이하자였다. 올해 관련 예산도 10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2배 증액했다.
-불법사금융예방대출처럼 임기 중 만들어진 상품이 많다.
“상품 종류가 많은 데 특징이 있다. ‘최저신용자 특례보증’은 신용평점 10% 이하인 사람이 많고, 앞서 말한 불법사금융예방대출은 연체자가 주로 이용한다. ‘근로자햇살론’(2010년 7월 출시)은 10~20% 사이인 사람이 많이 찾는다. 장단이 있다. 통합하면 신용평점이 다 올라가지 않겠나. 부족하지만 금융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 반경을 최대한 넓히려 한다.”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 취약계층이 있을까.
“시장 상황을 보면 자영업자다. 많은 자영업자들이 다중채무를 안고 있거나 부채 잔액이 높은 수준이다. 특히 취약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연체율이 증가하면서 채무조정 신청도 늘고 있다. 서금원도 자영업자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근로자햇살론’을 제외한 다른 상품들은 다 자영업자가 끼어 있다. 4월 출시하는 ‘햇살론119’도 자영업자 대상이다. ‘햇살론유스’도 창업한 지 1년 된 자영업자들에게 자금 지원이 가능하게끔 지원 대상을 확대했다.
-자금 지원이 중요하지만 단기적이다. 근본적 방안이 될 수 있나.
“우리가 하는 건 금융이다. 돈을 빌리고 갚을 수 있게 도움을 주면서 서민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서민금융은 복지가 아니다. 70~80%는 제때 상환하도록 돕고, 나머지 20~30%는 채무조정해서 상환받아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대위변제가 늘면서 구상채무자가 굉장히 많아졌다. 이들에게 금리 조정이든, 만기 연장이든 플랜을 짜줘서 정상적인 금융 생활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최근 개소한 ‘재기지원상담센터’도 그 일환인가.
“지난해 시범 운영하다가 3월 정식으로 열었다. 구상채무자를 놔두면 방치다. 연체 후 초기에 채무자와 연락이 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금리 조정이나 만기 연장만 해줘도 채무조정을 하겠다는 사람이 꽤 있다. 기존 콜센터 인원 중 몇 명을 뽑아 하고 있는데, 10명 정도밖에 안 된다. 너무 적다. 앞으로 더 중요해질 부분인데 외부 위탁이라도 해야 하나 싶다.”
-정부에서도 정책서민금융 공급액을 늘렸다.
“정책성 금융만 갖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현재 금융시장에서 예금과 대출을 취급하는 민간 금융사의 총 자산 규모가 4300조원 정도 된다. 이 중 소위 서민금융기관이라고 하는 상호금융의 총 자산 규모가 1000조원, 저축은행이 약 100조원이다. 금융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 그런데 이들 민간 서민금융회사들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새마을금고 대출 구성을 보면 담보대출이 90%가 넘는다. 담보가 없으면 대출을 받지 못한다는 거다. 이들이 자본 공급을 해줘야 한다.”
-자본 건전성 관리 등 민간에서도 애로사항이 있어 보인다.
“민간 금융회사는 서민·취약계층에 대한 상환능력 평가 역량이 낮다. 그렇다 보니 신용 평점을 갖고 하거나 담보를 요구한다. 취급 시 리스크가 높은 저신용·저소득자에 대한 대출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민간 금융회사들이 상환능력 평가 역량을 키워 상환능력이 있는 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자금을 공급해준다면 서금원은 상대적으로 더욱 취약한 서민들을 지원하는 데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 4300조원 시장에서 서금원이 공급하는 건 많이 해봐야 7조원밖에 안 된다. 시장이 좀 더 많은 일을 하면 우리는 더 밑단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취약계층의 신용 및 상환능력 평가가 쉽진 않을 것 같다.
“대안신용평가 모델이라고 해서 은행들을 비롯해 금융기관들이 점차 많이 도입하는 추세지만 아직 충분치는 않은 상황이다. 과거엔 금융 거래로 평가를 했는데, 소위 ‘신파일러’(금융거래 이력 부족자)들은 그런 정보가 없다. 서금원의 경우 서민들의 비금융 정보를 활용한 서민특화 신용평가 모형을 개발해 전체 보증 상품에 적용하고 있다. 통신정보 등을 반영하도록 설계됐다. 통화 습관이나 통신료 연체 등을 통해 성향을 파악하고 상환능력 파악에 이용한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