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이 9일 ‘대선·개헌 동시 투표’ 제안을 돌연 철회했다. 대선일에 개헌 국민투표도 같이 시행하자고 제안한 지 사흘 만이다. 대통령 임기 초엔 개헌이 국정의 블랙홀이 될 우려가 있고, 후반기엔 레임덕으로 추진하기 어렵기에 대선에 맞춰 개헌해야 한다고 제안했었다. 또 이번 대선에선 4년 중임제 같은 권력구조 개편만 하고, 나머지는 내년 지방선거 때 2차 개헌을 하자는 로드맵도 제시했다.
개헌은 우 의장뿐만 아니라 역대 국회의장단이나 사회 원로들도 그 필요성을 끊임없이 제기해 왔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사태에서 보듯 대통령 1인에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된 5년 단임제의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어서다. 그렇기에 대통령이 4년 뒤 국민의 평가를 받도록 하고, 2인자인 책임총리를 국회에서 뽑는 방식 등으로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우 의장이 일요일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개헌을 제안한 것도 이런 절박감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단 며칠 만에 이를 철회한 것은 더불어민주당의 반발이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 의장 회견 뒤 민주당에선 이재명 대표가 “당장은 민주주의 파괴를 막는 일이 더 중요하다”면서 사실상 제안을 거부했다. 또 친명계 의원들은 “국회의장 놀이 하지 말라”고 비판했고, 강성 지지층은 우 의장을 비명계 비하 표현인 ‘수박’으로 부르고 ‘개헌 수괴’ ‘긴급비상개헌령’ 등의 말로 문자폭탄을 날리기도 했다. 국민 다수가 공감하는 개헌 제안이 이런 식으로 비난받고 거부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다른 의견은 허용치 않으려는 것이나 합리적 토론 대신 공격하고 망신을 줘 굴복시키는 문화도 잘못됐다.
지금은 탄핵 이후 혼란을 가라앉히는 일 못지않게 권력 공백기에 치러지는 조기 대선을 적극 활용해 개헌을 추진하는 일도 중요하다. 비록 우 의장 제안이 철회됐지만 정치권이 개헌 논의를 계속 이어나가기 바란다. 이번 대선에서 안 되면 내년 지방선거 때라도 개헌 투표가 이뤄져야 한다. 대선 일정과 상관없이 국회 개헌특위도 빨리 발족해야 한다. 대선 과정에서 주자들이 개헌에 대한 공약을 제시하면 대선 뒤 개헌 작업이 더욱 탄력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