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쪽지] 하버드대 교양교육의 목표와 철학

입력 2025-04-12 00:35

하버드대 교양교육의 목표로 공표되었던 다음의 내용은 우리에게 낯섦을 준다. “교양교육의 목표는 추정된 사실들을 동요시키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며, 현상들 배후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폭로하고, 젊은이들의 방향감각을 혼란시켜 그들이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사실 이는 철학적 성찰을 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추정된 사실을 동요시킨다’는 것은 추정에 안주하지 말고 이것이 정말 참된 인식이 맞는가를 확인하게 한다는 의미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든다’는 것은 ‘으레 그러려니’ 하는 습관적인 인식에 안주하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현상들 배후에 일어나는 것을 폭로한다’는 것은 현상의 이면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방향감각을 혼란시킨다’는 것은 사회에서 인정되고 있는 방향감각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지 않게 한다는 것이고,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은 ‘자기 자신만의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와는 아주 멀다. 단순화에 열광하면서 빨리 답을 찾으려 하는 경향성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 빨리 결론 내려버리고 편리한 답에 안주하려다 보면 함부로 추정하고 보이는 것에만 주목하게 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사태의 전모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철학은 가능한 여러 가지 생각을 두고 각각 생각의 타당한 측면과 타당하지 않은 측면을 모두 검토한다. 이러한 과정은 최대한 다각도에서 문제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철학수업 후에 학생들이 “교수님,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어요!”라고 하면 이는 철학수업에 대한 찬사다.

어느 하나의 답을 고정된 답으로 여기는 것은 철학에서 가장 경원시하는 태도다. 영화 ‘승부’에는 이런 대사가 있었다. “답이 없지만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바둑이다.” 나는 철학도 그렇다는 생각을 했다. 고민하면서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 바로 그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철학은 사태의 전모에 접근하려는 노력이다. 보편적 인식을 향하여 최대한 다각도에서 바라봄으로써 인식의 편향을 제어해 나가려 노력하는 것이다. 함부로 추정하거나 성급한 결론에 안주하지 않고 모호성을 견디려 노력하면서 최대한 다각도로 볼 때 사태의 전모에 좀 더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사태의 일부만을 보고 성급한 결론에 이르면 잘못된 정보에 입각해서 행동을 하게 되기 때문에 기대하던 결과를 얻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사태의 전모에 접근하려 노력해야 할 이유다.

답이나 팁에 열광하는 시대다. 단순하게 표현하다 못해 자극적으로 표현해야 주목받는 시대다. 그렇지만 빨리 결론에 도달하려는 성급함을 내려놓고 차분히 따지는 태도, 지금의 나의 결론은 과정적 결론이며 이 결론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면 지금의 결론을 포기하겠다는 태도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지금의 결론이 과정적 결론임을 잊지 않는 것, 과정적 결론의 타당성을 지속적으로 검토하는 것, 그것이 철학적 태도다.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