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현 목사의 복음과 삶] 행위만 있고 삶은 사라진 시대

입력 2025-04-10 03:05

현대를 과잉 활동성의 시대라고 말한다. 하고 있는 일을 멈추지 못한다. 안식이 없다. 결과주의 세상이다. 눈에 띄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퇴출이다. 현실은 수고한 만큼 결과를 얻기 힘들다. 성취 욕구가 강할수록 실패의 쓴맛을 볼 가능성이 크다. 초라한 결과로 인해 좌절을 맛보기 쉽다. 결과는 나중에 생각하더라도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 의미를 못 느끼는 일은 고된 노동이다.

20대는 무엇인가를 향해 열정적으로 달려간다. 30대는 어느 정도 이론과 경험의 조화를 이루고자 한다. 40대는 그동안 축적된 경험을 통해 자신의 분야에 꽃을 피우려 한다. 50대 이후는 열매를 거두는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엔 변수가 많다. 젊은 시절에는 일에 모든 것을 다 건다. 어느 정도 보람도 얻고 열매도 얻고 경제적으로 조금 나아져 간다.

문제는 밀려오는 스트레스다.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오르기 어렵다. 정작 높은 자리에 오르면 중압감은 심해진다. 나보다 나은 것도 없어 보이는데 나보다 더 잘 누리는 것을 보면 힘들어진다. 은수저를 물고 나온 사람이 있다. 더 많은 실적을 쌓고 돈을 많이 벌려고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당장의 즐거움이나 모험을 추구한다. 새로운 취미생활을 찾고 기록에 도전하고 성취감을 맛보고 싶어한다. 철인3종경기에 도전하거나 하프마라톤 등에 출전하며 변화를 모색한다.

성경에서 지혜자로 알려진 솔로몬은 세상에 속한 것들의 무의미함을 토로한다. 그는 일과 성공, 사랑과 쾌락, 지혜와 지식을 다 추구해 보았지만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인간이 추구하는 것들을 소개한다. 지혜와 지식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시도하지만 헛됨을 발견한다. 이전에는 지혜와 지식이 참된 진리를 알아가는 데 쓰였다면 오늘날은 생존의 수단으로 바뀌었다. 당장 써먹을 지식, 돈이 안 되는 지혜는 의미가 없다.

지혜와 지식의 방향이 없다. 현대인들은 저마다 똑똑한데, 문제는 멀리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보와 지식은 많은데 미래를 알지 못한다. 또 즐거움을 통해서만 만족을 얻으려고 한다. 순간적 만족을 얻는 일에 몰두하면 유혹에 취약해진다. 세상은 갈수록 말초적이고 육감적으로 변한다. 쾌락의 뒤끝은 쓰다. 열심히 일해서 성과를 얻고자 노력한다. 성공, 권력 지향, 명예를 추구한다. 인정받고 싶어 하고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 한다. 원초적 욕망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위해 기여한 인생을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업적을 알아주고 나의 인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 사람들에게서 회자되기 원한다. 그러나 그런 결과를 얻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결과를 얻어냈다 해도 시간의 강물은 빠르게 흘러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겉으로는 명성을 얻었을지라도 그 내면은 자기 과시의 욕망으로 가득한 속물에 불과하다. 영원한 가치가 아닌 금방 사라질 것들에 혈안이 되어 살아가는 삶은 헛되다. 지혜자는 해 아래 모든 수고가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 같다고 했다. 개인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국가, 혹은 인류의 자랑스러운 문명도 오래가지 못해 잊힌다.

현대의 모든 일은 세분돼 있다. 단순 노동이 많다. 온종일 돈을 세는 일, 볼트를 끼우는 일, 환자의 특정한 부위를 늘 바라보며 치료하는 일 등이다. 생각할 겨를 없이 무한 반복하며 살아간다. 관조가 사라졌다. 인간이 기계 부속품처럼 움직인다. 일 자체가 우상이 된다. 열심히 일하지만 고립돼 있고 외롭다. 정신질환자들이 늘어난다.

최선의 길을 찾아야 한다. 돈과 권력이 우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 돈은 적게 벌더라도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건강한 관계들을 맺고 유지하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혼자만 성공하면 뭐 하는가. 욕망과 허세를 제거해야 한다. 행동 추구가 아니라 존재를 추구하는 삶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의 주목적은 섬기는 데 있다. 소명의 삶이다. 분주한 시대, 개인이 강조되는 세상에서 이기심을 버리고 공공선을 추구하는 삶이 모두가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이규현 부산 수영로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