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집권으로 바뀐 세상
빨리 깨닫고 행동하라는 미국
경제적 근거도 없는 상호관세
양자협상 통해서만 조정 가능
미리 선물보따리 푸는 건 최악
카드 준비해 유연하게 버텨야
빨리 깨닫고 행동하라는 미국
경제적 근거도 없는 상호관세
양자협상 통해서만 조정 가능
미리 선물보따리 푸는 건 최악
카드 준비해 유연하게 버텨야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은 기자실의 구성을 다변화하고 관례화된 질의순서를 바꾸며 적대적인 언론에 공세적 대응을 하는 등 백악관 대변인실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그런 그가 지난 2월 말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설전에 대해서도, 또 3월 17일 예멘 후티 반군에 대한 공습을 설명할 때도 빠뜨리지 않고 강조한 말이 있다. 바로 “마을에 새로운 보안관이 왔다(There’s a new sheriff in town)”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으로 세상이 바뀌었으니 현실을 빨리 자각하고 이에 맞게 행동하라는 취지다. 이웃나라들, 이란과 후티 반군을 포함한 악당들, 그리고 우방국을 포함한 세계 모든 나라가 다 해당된다.
통상 분야에서 새로운 보안관이 왔음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사건은 4월 2일 발표된 세계 60개국에 대한 상호관세율이었다. 보편관세 10%를 초과하는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나라만 60개국, 유럽연합(EU)이 27개국으로 구성돼 있으니 사실상 86개국이다. 영국, 호주, 브라질, 싱가포르, 칠레, 콜롬비아같이 10% 기본관세를 부과하는 나라들은 제외된 숫자다. 이렇게 많은 국가들을 상대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 사례는 적어도 전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초유의 일이다. 미국이 바뀌었음을 각인시킨 큰 사건임에 틀림없다.
소위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기준도 경제학적 근거가 없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024년 해당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대미 교역액으로 나누어 백분율로 만든 다음, 임의로 반을 뚝 잘라서 상호관세율을 도출했다. 수입수요의 가격탄력성이나 관세의 수입가격전가율 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이것도 실제 관세율 도출에서는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배려(?)했다.
결국 어떤 이유로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가 갑자기 늘어난 나라들은 높은 상호관세율을 부과받게 됐다. 가장 높은 50%의 관세율이 배정된 남아프리카의 빈국 레소토는 2024년 미국에 청바지와 다이아몬드 2억3730만 달러를 수출했다가 최고관세율을 내는 나라가 됐다.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이 280만 달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마을에 새로운 보안관이 와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면 그것이 합리적인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 숨은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미국이 9일부터 실제로 부과하기 시작한 상호관세율은 해당 국가들과의 양자협상용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단순히 협박만을 위한 허위전술은 아니다. 협박이 정말로 통하려면 실제로 그 조치를 이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부과된 상호관세는 향후 양자협상을 통해서만 조정이 가능하다.
마구잡이로 상호관세율을 설정했기 때문에 비관세장벽 상당치를 어떻게 도출했는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무관세인데 왜 25%인가, 부가세와 국내 규제를 어떻게 관세로 환산했는가를 따지는 것은 협상의 초점에서 벗어난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어떤 수단을 쓰든지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라는 것이다.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획기적으로 늘리든지, 공장을 미국으로 옮겨 현지생산으로 전환하든지, 아니면 국방비를 늘려 미국 무기를 더 사든지, 하여튼 성의를 보여 실제로 무역수지가 균형에 근접하면 기본관세 10%만 부과하는 특혜그룹으로의 편입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보복관세를 언급하거나 공동대응하자고 다른 나라에 제안하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를 가장 화나게 하는 일이다. 양자적으로 협상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달려오되 개별적으로 와서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면 어느 정도 상호관세율을 깎아 줄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일단 한·미 FTA에서 다뤄 볼 수 있는 사안이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략적으로 특혜무역협정을 맺은 나라들에 강공을 퍼붓고 있지만, FTA에는 상품교역뿐만 아니라 서비스, 투자, 지식재산권, 정부조달 등 다양한 영역이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서둘러 달려가 선물보따리를 풀어놓고 선처를 기다리는 일이다. 우리가 제시할 카드를 준비하고 실전에 가서는 관세를 때리면 맞을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캐나다와 멕시코는 여전히 유효한 우회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