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개그맨이 아이 교육에 올인하는 ‘대치맘’을 풍자해 화제가 됐다. 대치맘의 상징으로 입고 나온 몽클레어 패딩에 불똥이 튀었다. 과시의 상징이 풍자의 대상이 되었으니 벗어 던질 수밖에!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렌은 ‘유한계급론’에서 성공한 부유층의 낭비적·과시적 소비를 예리하게 비판했다. 유한계급은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명성이나 과시를 위해 지출한다는 것이다. 차별과 뽐내기를 위한 소비다 보니 따라 하기 경쟁이 일어난다. 아이를 키우는데도 과시적 소비와 그에 따른 비용이 증가할 것이며, 이는 출산율 저하를 가져올 것이라는 놀라운 분석을 하고 있다. 120여년 전에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다녀간 것 같다.
자녀를 위한 과시적 소비의 사례로 조기유학 열풍을 들 수 있다. 그 열풍이 최상류층만의 차별적 투자가 아니게 되자 열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비용 대비 효과가 없다는 경험적 결과이기도 했다.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영어 조기교육이다. 이제 ‘7세 고시’ ‘4세 고시’라는 말처럼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이다.
영어만은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싶은 부유층이 선행의 선행을 경쟁적으로 시도하며 ‘더 어릴 때’에 배팅하는 중이다. 하지만 한국말에도 익숙해지기 전에 억지로 주입된 영어가 우리말 학습의 지체, 정서 불안 등 다양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교육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아이를 위한 일’이 아니라 그저 ‘학대였다’는 점은 조만간 드러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 열풍도 시들해질 것이다. 하지만 부유층의 과시적 소비는 전염성이 강하다. 삽시간에 사회 전반으로 퍼진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과시적 소비의 전염성에 자녀가 뒤처질 것에 대한 학부모의 염려가 결합한다면 폭발력은 예상보다 클 수 있다.
문제는 회복력이다. 부유층은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옵션을 제공할 여력이 있다. 하지만 재력과 정보력, 인적 네트워크 등이 부족한 평범한 가정에선 다를 수 있다. 몽클레어 패딩을 의류 수거함에 고민 없이 던져 넣을 수 있는 사람과 눈물을 머금고 중고 마켓에 패딩을 사 달라는 글을 올리는 사람이 받는 데미지가 다른 것처럼.
다시 우리 공교육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공교육은 조기 선행학습이 낭비적 지출이라는 믿음을 주고 있는가. 사교육에 불안해하지 않아도 내 아이가 소질과 적성에 따라 잠재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경쟁에 내몰아야 하는 학부모들은 애타는 마음으로 이런 질문을 하고 있다. “사교육 꼭 해야 하나요?” 7세 고시, 4세 고시가 그저 ‘과시적·낭비적 소비’에 불과하다는 대답을 이제 국가가 내놓을 때다. 방과후 학교 확대, EBS 활용 같은 수십년째 반복해온 말치레는 이제 더는 통하지 않는다.
박성수 전 경남도교육청 부교육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