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의 계절이다. 화사하게 피어나던 꽃잎들은 어느새 비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져 간다. 너무나 짧은 절정에 맞춰 남녀노소, 지역과 계층을 막론하고 모두 벚꽃을 보기 위해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그 가운데 한 곳이 천년고도 경북 경주다. 해마다 몽글몽글한 연분홍 눈송이 같은 벚꽃이 활짝 필 때면 경주는 도시 전체가 꽃 등불을 밝혀 매단 듯 환해진다.
경주의 벚꽃 명소로 보문호가 꼽힌다. 경주월드와 경주타워, 보문관광단지 등이 몰려 있어 가족과 연인들에게 특히 인기다. 보문저수지는 1952년 1월 1일에 착공해 1963년 12월 30일에 준공한 대규모 저수지다. 보문 저수지는 지금 보문관광단지의 중심으로 위락과 휴양의 공간이다. 보문 저수지가 건설된 지 몇 년 후인 1971년 저수지의 기능은 바뀌게 된다. 이듬해인 1972년부터 사적지구 정비와 함께 보문호를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종합관광휴양단지 개발이 시작됐다. 당시 호반의 조경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키가 작은 개량 벚나무를 많이 심었다. 호수를 둘러싼 4.2㎞의 산책로를 따라 벚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호수에 비친 벚꽃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다.
보문관광단지 한국대중음악박물관 바로 옆에는 소담한 연못과 정자가 있는 소공원이 있다. CNN이 한국에서 꼭 가보아야 할 명소 50선으로 꼽았던 보문정이다. 벚꽃 명소인 보문정은 경주의 대표 벚꽃 스폿이다. 호수 위로 쏟아지는 벚꽃이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연못의 물에 반사돼 떠 있는 정자와 벚꽃을 한 프레임에 담으면 아름다움이 배가 된다.
인근 황룡원은 신라시대 황룡사 구층 목탑을 모티브로 현대적인 공법과 기술을 접목해 지은 건물이다. 보문 단지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꼽힐 만큼 주목받고 있는 이 건물은 현재 개인과 기업 등을 대상으로 다양한 명상과 수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연수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전 예약자에 한해 시설 이용이 가능하다. 숙소는 탑 내부에 자리한 온돌 타입과 중도타워를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타입의 연수동으로 나뉜다.
황룡원 앞 도로 양쪽에 벚나무가 식재돼 있어 벚꽃과 건물을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기기에 좋다. 높이 솟은 황금 탑과 만개한 벚꽃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다. 특히 해 질 무렵에는 황금빛 석양과 어우러진 탑, 그리고 그 주변을 감싸는 벚꽃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특히 야간에는 자동차 후미등의 붉은 빛과 황룡원의 고즈넉한 자태가 어우러져 벚꽃과 함께 황홀한 풍경을 연출한다.
최근 많은 발길이 몰리는 곳은 대릉원 돌담길이다. 대릉원은 경주시 노동동과 황남동에 있는 신라 시대의 고분군이다. 대릉원 안에는 전 미추왕릉을 비롯해 천마총과 황남대총 등이 있다. 지름 47m, 높이 12.7m 규모의 천마총에서는 금관 등 많은 유물이 나왔다. 당시 천마도가 그려진 말안장 드리개가 출토되면서 이름을 얻었다.
봄이 되면 그 고풍스러운 돌담을 따라 벚꽃이 만개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약 700m 길이의 벚꽃길은 경주를 대표하는 벚꽃 명소로 떠오르며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돌담길 따라 걸으면서 벚꽃 아래로 펼쳐지는 고분들을 바라보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목련이 피는 때가 되면 줄을 서서 촬영하는 포토존도 유명하다.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2025 경주 대릉원 돌담길 축제’가 열려 더욱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축제 기간 중 매일 오후 8시와 9시 벚꽃 아래에서 음악과 조명이 어우러지는 ‘벚꽃 라이트쇼’가 펼쳐졌다. 밤하늘과 조명이 만든 색다른 봄밤 풍경은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흥무로 왕벚나무길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곳이다. 길 양옆으로 늘어선 벚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어 분홍빛 터널을 지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밤에는 조명이 더해져 환상적인 벚꽃 야경을 펼쳐놓는다.
흥무로는 삼국통일에 중추적 역할을 한 김유신 장군 덕분에 얻은 이름이다. 왕이 아니었지만 신라 역사상 드물게 ‘흥무대왕’이라는 시호를 받은 인물이다. 서악마을 옥녀봉 기슭에 김유신 장군 묘가 왕릉처럼 조성돼 있다.
여행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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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시즌 경주 시내는 교통이 혼잡하다. 자가용보다는 KTX 열차편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신경주역에서 렌터카를 빌려 이동할 수 있다.
보문호 서쪽에 길게 누운 명활산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경주역사유적지구 중의 하나인 명활산성이 있다. 도로 가까이 명활산성의 북문이 발굴 복원돼 있어 잠시 들르기 좋다. 명활산성지구에 들어서면 숲머리 음식단지가 있다. 경주 맷돌 순두부가 유명하고 각종 한식을 맛볼 수 있다. 대릉원 부근에는 비슷비슷한 솜씨와 차림으로 쌈밥을 내는 식당들이 몰려 있다.
보문호 주변에는 볼거리가 많다. 경주 세계문화 엑스포공원, 신라 밀레니엄 파크, 선재 미술관, 테지움, 테디베어 박물관 등이 인접해 있다. 보문호 주변에는 수준급의 호텔과 리조트는 물론이고 깔끔한 모텔도 여럿 있다. 보문호수에서는 자전거 대여도 가능하다.
경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