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안다… 그 순간이 섭리였다는 걸

입력 2025-04-11 03:05
신약학자 톰 라이트는 ‘톰 라이트의 그리스도의 길’에서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는 건 일상에서 평화 화해 정의 소망을 위해 창조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사진은 한국 순례객들이 지난 2018년 이스라엘 성묘교회를 둘러보는 모습. 국민일보DB

기독교인은 흔히 인생을 순례길에 비유한다. 둘 다 예상치 못한 장소와 시간에서 뜻밖의 방식으로 절대자를 마주해 삶의 전환점을 맞기 때문이다. 사순절을 맞아 인생 여정 속 하나님의 흔적을 돌아보도록 돕는 신간 두 권을 소개한다.

아라비아로 간 바울’(북오븐)은 다메섹(현 시리아 다마스쿠스) 회심 이후 안디옥교회 파송 선교사로 활동하기 전까지 사도 바울의 행적을 추적한 역사 소설이다. 초기 기독교 역사를 조명하는 성서학 도서를 다수 펴낸 벤 위더링턴 3세 미국 애즈버리신학교 신약학 교수와 제이슨 A 마이어스 미국 고든칼리지 신약학 교수가 공저했다.

아라비아로 간 바울/벤 워더링턴 3세·제이슨 A 마이어스 지음/오현미 옮김/북오븐

사도행전에서 사울이란 이름으로 초기 기독교인을 박해하던 바울은 회심 이후 갈라디아서 등 바울 서신에서 ‘이방인의 사도’로 재등장한다. 이 사이엔 “14년 이상의 공백이 있다”는 게 저자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성경에선 관련 기록이 전무하다. 바울이 선교지에서 회심자를 얻은 이후에야 이들에게 편지를 썼기 때문이다.

책은 갈라디아서와 고린도전·후서에 언급된 일부 정보와 지금껏 발굴된 역사적 증거에 저자들의 상상력을 보태 재구성한 ‘바울 공백기 설명서’다. 책 속 바울의 여정은 다메섹에서 나바테아 왕국의 수도 페트라로 떠나는 길에서 시작한다. 페트라는 전 바리새파 유대교인이자 현 예수 추종자인 그를 알아볼 사람이 드물 것이기에 찾아간 일종의 도피처였다. 가죽 가공술에 익숙했던 바울은 유목민인 나바테아인에게 양가죽 천막을 공급하는 일로 생계를 이으며 복음 전파 기회를 엿본다.

저자들은 페트라에 정착한 바울이 겪는 여러 사건을 전하며 고대 세계의 문화와 풍습 등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바울은 절벽을 깎아 만든 공동묘지와 신전을 보며 나바테아인의 사후 세계관과 다신교적 전통을 이해하는 식이다. 각종 문화·스포츠 행사가 열리는 극장과 지역 특산품인 향신료 판매 시장, 콩·곡물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 등을 묘사하며 그리스와 로마, 시리아 등 인근 고대 문명의 실제를 보여준다.

유대인과 이방인 간 복음 전달법에 차이를 둬야 한다는 입장도 이 시기 정립된다. 바울은 다신교도인 이방인에게 예수를 제대로 전하기 위해선 “유대교의 모세 율법을 넘어서는 온전한 새 언약”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가 바울 서신에서 “그리스도 안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고 재차 강조한 이유다. 바울이 세운 신학적 토대는 훗날 후대 교회의 세계 선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책은 평생 배우자 없이 살았지만 기혼자와 비혼자의 처지를 깊이 이해했던 그의 정황에 착안해 바울이 페트라에서 가정을 꾸렸다는 설정도 담았다. 전염병으로 아내와 자녀를 잃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을 거란 가정에서 나온 사고 실험이다. 저자들은 “바울은 하룻밤 새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며 “역사에 기초를 둔 이 소설이 ‘실패는 믿음 부족의 결과’란 교회의 ‘그릇된 승리주의’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톰 라이트의 그리스도의 길’(두란노)은 ‘역사적 예수’와 바울 신학 연구로 유명한 신약학자 톰 라이트가 쓴 성지순례기다.

톰 라이트의 그리스도의 길/톰 라이트 지음/강선규 옮김/두란노

여러 교파 간 경쟁과 지나친 상술이 뒤엉킨 이스라엘에서 그가 가장 절실히 느낀 감정은 고통이다. 저자는 성지 곳곳에서 인종 학살의 아픔을 기억하는 아르메니아 정교회 성도와 대대로 살던 집을 빼앗긴 팔레스타인인의 분노를 마주한다. 인류의 희망인 메시아의 무대였던 성지에 모든 민족의 아픔이 몰리는 역설적 상황을 두고 저자는 말한다.

“예수님이 부활하고 승천해 영광을 받았기에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분을 만날 수 있다.… 거리와 학교, 빈민가 등 가난과 고통의 자리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골고다 언덕에 다다른 저자는 부활을 믿는 건 곧 “평화와 화해, 정의와 소망과 새 출발을 위해 모든 일상에서 창조적으로 노력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이런 삶을 살고자 하는 노력하는 이들에겐 “당신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것”(고전 15:58)이라고 격려한다. 이-팔 갈등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분쟁을 기독교인이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관한 조언도 유익하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