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적으로 경제 어려움이 가중되는 가운데 조기 대통령 선거가 결정되자 은행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은행을 상대로 한 정치권의 사회 환원 압박이 더 거세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은행은 민심잡기에 좋은 타깃이 될 것”이라며 “누가 당선돼도 문제”라고 걱정한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 시중은행 대관 부서는 차기 대선 출마 후보군들의 선거 공약 모니터링에 돌입했다.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등 정당들이 아직 대선 후보 경선도 치르지 않았지만 선제적으로 이슈를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다.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은행들은 본격적으로 국회와의 접촉을 늘리는 분위기다.
은행들은 최근 이자 장사, 높은 임금과 성과급 등으로 사회적 반감을 사고 있어 정치권의 표적이 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총 당기순이익은 16조4205억원이었다. 전년보다 10.3% 늘어난 규모로, 이자 이익으로 거둬들인 수익만 41조8760억원이다. 4대 금융지주의 임직원 평균 연봉 역시 1억1800만원으로 전년보다 상승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경제가 어려울 때 정치적 행사까지 겹쳐 은행권에 사회공헌 요구가 더 늘어날까 부담감이 크다”며 “현재 시행 중인 공헌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고려 없이 기존보다 지원을 늘리라고 요구할 공산이 있다”고 말했다.
조기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면서 정치권의 은행 호출도 잦아지고 있다. 9일에는 윤한홍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과 국민의힘 소속 정무위 위원들이 5대 은행장(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및 전북은행장, 토스뱅크 대표이사 등과 간담회를 한다. 의원들은 은행권이 추진 중인 소상공인 지원 방안의 현안에 대해 보고받을 예정이다. 지난 1월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지원에 힘을 쏟아달라고 당부했다.
은행권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상생금융’이다. 은행들은 지난해 말 앞으로 3년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2조원 규모로 지원하는 방안을 확정하고 발표했는데, 추가적인 지원 요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민주당이 추진했던 횡재세(초과이익 환수)가 다시 이슈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국회에선 가산금리 산정 기준 공개, 영업점 폐쇄 기준 강화 등 은행을 겨냥한 여러 입법도 추진되고 있다. 민병덕 민주당 의원은 최근 은행이 대출 금리에 예금자보호법상 보험료와 법정 출연금 등을 반영하지 못하도록 하고 이를 어길 경우 임직원을 처벌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보수 정권보다 진보 정권에서 금융권 규제가 강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현재는 양쪽 모두 은행을 비판하는 등 은행이 ‘공공의 적’으로 여겨지고 있다”며 “이번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은행에 불똥이 튈 것”이라고 말했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