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밥 취급받던 ‘쌀의 역습’

입력 2025-04-09 23:14 수정 2025-04-09 23:14
게티이미지뱅크

“쌀 가격이 너무 올라서 도시락에 밥을 못 담습니다.”

일본의 유명 덮밥 브랜드 ‘호카호카테이’가 지난 1일 만우절을 맞아 공식 SNS에 올린 게시글이다. 급등한 쌀값에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본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해시태그로 #만우절(AprilFool)을 달았지만 “이런 시국에 할 농담이냐”는 비판이 쇄도했고, 결국 업체는 공식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블룸버그는 “이런 장난이 논란이 될 정도로 일본의 쌀값 폭등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9일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지난달 넷째 주 기준 쌀 5㎏ 소매가는 4206엔(약 4만2000원)으로 1년 전보다 104% 폭등했다. 일본의 대표 품종인 니가타산 고시히카리 도매가 역시 지난 2월 하순 기준 60kg당 5만1250엔(약 49만원)까지 올랐다. 1993년 ‘헤이세이 쌀 파동’ 이후 31년 만의 최고치다.


전 세계가 쌀값 하락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유독 ‘밥심 국가’ 일본과 한국만이 역주행하고 있다. 국제 쌀 선물 가격은 10개월 연속 하락세인데 반해, 일본 쌀값은 지난해 여름부터 10개월 넘게 상승 중이며 국내 가격 역시 6개월 연속 오름세다.

“사라진 쌀은 어디로 갔나”

일본에서는 ‘레이와 쌀 소동’이라 불리는 초유의 품귀 사태가 벌어졌다. 쌀 생산량은 전년보다 2.7% 늘었지만, 시장에 유통된 물량은 오히려 줄면서 1년 새 쌀값이 2배로 폭등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지난 2월 긴급 비축미 20만t 방출을 결정했다. 재난 상황 외에는 처음 있는 일이다.

유통량 급감의 원인에 대해 관광객 증가, 직거래 확대 등 다양한 추측만 난무하는 가운데, 일본이 70년부터 도입한 ‘감반 정책’(쌀 생산조정)의 장기적인 부작용이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69년 317만㏊였던 일본의 논은 2023년 124만㏊로 줄었다. 54년 전의 벼 재배면적에서 60.9%가 사라진 셈이다. 서울시 면적의 약 32배에 달하는 규모다. 쌀 생산량도 67년 약 1309만t에서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일본 정부의 늑장 대응과 약해진 수급 통제력도 사태를 악화시켰다. 2023년 폭염 여파로 쌀 공급이 줄었음에도, 지난해 농림수산성은 햅쌀 출하가 시작되면 시장이 자연스럽게 안정될 것이라 판단해 비축미 방출을 미뤘다. 안일한 대응은 쌀값 급등으로 이어졌다. 한때 전체 생산량의 90% 이상을 수매하던 일본농업협동조합(JA)의 집하율도 현재는 5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본 정부의 시장 통제력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통계 조사 인력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와타나베 요시아키 일본 니가타식량농업대학의 명예교수는 “일본은 현재 쌀 생산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며 “신뢰할 수 없는 표본으로 전체 생산량을 추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후위기와 농촌 고령화, 농업 인구 감소로 쌀 생산 기반이 흔들리는 가운데, 이번 일본의 ‘쌀 대란’은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식량안보 위기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한국 농림축산식품부는 “일본과는 상황이 다르다”며 거리두기에 나섰지만, 국내에서도 쌀값과 생산량을 둘러싼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과잉’이라는 정부 vs ‘위기’라는 농가

한국 역시 쌀값이 지난해 11월부터 6개월 연속 상승 중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20㎏당 중도매가는 5만840원으로, 2023년 11월 이후 18개월 만에 최고치다. 지난달 평균 쌀 20㎏당 소매가격은 5만5237원으로, 3월 기준으로 최근 10년 중 2021년 3월(5만9990원) 다음으로 가장 높다.


반면 쌀 수확량은 역대 최소 전망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쌀 생산량 전망은 344만t으로, 지난해(358만5000t)보다 약 4% 줄어든 규모다. 통계청이 미곡 생산량 집계를 시작한 98년 이후 최저치다. 벼 재배 의향 면적 역시 66만3000ha로 전년 대비 5% 감소했다. 이 역시 통계 집계 이래 가장 큰 폭이다. 지난해 쌀 생산량은 358만5000t이었고 전년(370만2000t) 대비 3.2% 감소했다.

한국 정부는 그런데 쌀 과잉공급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벼 재배면적을 8만ha 감축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여의도의 276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각 지방자치단체에 감축 목표가 부여돼 실행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오카자키 전 일본 농림수산성 부장은 “한국이 추진 중인 8만ha 감산은 일본보다 훨씬 큰 규모”라며 “일본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지난해 신곡 기준 소비량을 넘어서는 ‘초과 생산량’은 5만6000t인데, 정부는 이보다 많은 20만t을 시장에서 격리했다.

이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는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쌀 산업은 ‘구조적 공급과잉’ 상태이며, 매년 초과 생산량이 20만t 이상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감축 정책은 이러한 시장 과잉 구조를 바로잡고, 장기적으로 농가의 소득 안정과 쌀값 유지에 기여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감산이 식량안보를 위협한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도 정부는 “현재 감축은 논을 보전한 상태에서 전략작물 재배 등으로 전환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탄력적으로 대응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소비자 가격은 상승 농가 수익은 하락

쌀값 상승세에도 농가의 순수익은 오히려 4분의 1 가까이 급감했다. 상승 중인 소비자 가격과는 반대로 농민이 실제로 받는 ‘산지 쌀값’은 하락세다. 여기에 생산 비용 증가와 쌀 소비 감소까지 겹치며 농업 수익성은 크게 악화됐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4년산 논벼(쌀) 생산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0아르(a=100㎡)당 농가 총수입은 57만2000원으로 전년보다 12.6% 줄었다. 순수익은 27만1000원으로 무려 24.3% 급감해 2016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최근 5년 기준으로만 봐도 10a당 순수익은 연평균 6.5%씩 감소하고 있다. 반면 생산비는 상승세다. 지난해 10a당 논벼 생산비는 88만2000원으로 전년보다 0.8%(7000원) 증가했고, 20kg당 쌀 생산비도 3만3000원으로 2.6%(845원) 올랐다. 고령화에 따른 인건비 부담, 위탁영농비, 종묘비 등 직접생산비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어서다. 반면 집중호우와 고온으로 인한 병충해 피해로 생산량은 1.7% 줄면서, 전체적인 투입 대비 수익성이 악화되는 구조다.

유통 구조 전반의 비효율성도 문제다. 유통 과정에서 과도한 마진이 붙으면서, 쌀값이 올라도 정작 그 수익은 농민에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왜곡된 구조가 고착화됐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