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다음주 초 1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통상 대응 및 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에 3조∼4조원, 서민·소상공인 지원에 3조∼4조원을 투입하겠다는 방침이나 경제 상황으로 봐선 많이 미흡한 수준이다. 이달 초 미국이 우리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키로 하면서 산업·금융계의 불안이 고조되고 있음에도 정부의 추경안 규모가 지난달 말 처음 제시된 것과 같은 건 문제다. 여당 내에서도 추경 재검토 목소리가 분출한 만큼 정부는 규모를 대폭 늘리는 게 맞다.
정부는 역대 최대의 산불 피해를 입은 직후인 지난달 30일 ‘10조 추경안’을 제시했다. 통상리스크 대비 명목도 있지만 방점은 재난 대응에 찍혔다. 하지만 지난 4일 미국이 각국에 무차별 상호관세를 부과하며 글로벌 금융 및 무역 시장에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상황에선 추경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단순한 관세 수준을 떠나 미국발 관세전쟁은 세계 무역을 위축시켜 국내총생산(GDP) 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4.6%나 되는 한국에 직격탄이다. 특히 1~2위 교역국인 미·중이 상호 보복관세로 맞붙는 상황은 우리 산업의 수출 공급망 붕괴, 실적 악화를 부를 수 있어 비상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정부가 추경 원안을 고수한 건 안이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가 벼랑 끝에 몰렸기에 추경 예산을 과감히 늘려야 한다”고 주문했고 한동훈 전 대표 등 대선 잠룡들도 일제히 동조했는데 일리 있다 하겠다. 속히 당정 협의를 통해 채산성이 악화될 수출 기업 지원, 내수 활성화 예산을 담은 추경 증액을 논의해야 한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가 경기 효과와 재정건전성을 고려해 제안한 20조원 안팎이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다수당 더불어민주당도 적극 협조하기 바란다. 효과도 불확실한 이재명 대표용 지역화폐 예산을 추경안으로 고집하며 논의를 질질 끄는데 그럴 때가 아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미국의 상호관세를 “국난”으로 규정했다.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 국난 극복은 정치권 단합과 신속함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