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은 생명의 기본값… 과학·종교 손잡아야”

입력 2025-04-09 03:0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8일 서울 한신대에서 열린 ‘생명의 협력: 이타적 사회에 관한 종교와 과학의 대화’ 학술대회에서 학생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협력 없이 살아남은 생명은 없습니다. 자연은 경쟁보다 협력을 통해 생명을 이어왔습니다.”

세계적 생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말이다. 최 교수는 8일 서울 한신대학교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자로 나서 “협력은 생명의 기본값”이라고 말했다. 그는 “식물과 곤충, 인간과 장내 미생물의 관계는 상호 이익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며 “때로는 종을 넘어 협력하는 사례가 자연계에 무수히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그는 “과학은 혼자서 인간을 구하지 못한다. 종교가 함께할 때 가능하다”며 하버드대 재학 시절 지도교수였던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생명의 편지’를 언급했다. 책에서 윌슨 교수는 “인간 사회를 이끄는 두 바퀴는 과학과 종교”라며 “환경 위기 앞에서 두 영역이 손을 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세례를 받진 않았지만 수십 년간 아내와 함께 교회에 출석해 왔다”며 “기독교 정신이야말로 공감 양심 협력이라는 주제를 가장 깊이 다룰 수 있는 토대”라고 꼽았다. 그는 “인간은 공감과 책임을 추구할 능력이 있고 그럴 의무도 있다”며 “종교와 과학이 함께 일상에서 공감과 협력을 실현할 방법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전했다.

국립과천과학관장을 지낸 이정모 펭귄각종과학관장은 “이타성은 인간만의 고유 능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동물도 협력하고 도우며 살아간다. 코끼리는 쓰러진 가족을 일으켜 세우고 돌고래는 다친 동료를 수면 위로 밀어올려 숨 쉬게 돕는다. 흡혈박쥐는 사냥에 실패한 개체에 피를 나눠주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이 관장은 “이타성은 인간 유일의 고등한 도덕이 아니라 수많은 종이 공유하고 있는 감정과 반응의 체계이므로 우리가 다른 생명을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져야 한다”며 “동물을 자원이나 도구가 아닌 도움과 위로, 관계를 나눌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공감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도 제시됐다. 김상덕 한신대 교수는 “감정적 공감을 넘어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책임지는 성찰적 공감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복음은 이웃 사랑을 단순한 감정이 아닌 의지와 결단의 문제로 확장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무비판적 공감에 대해선 경계했다. 그는 “공감은 인간 사회에 필수적인 정서지만 왜곡될 경우 집단 내 편향성을 강화하고 외부에 대한 혐오로 전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생명의 협력: 이타적 사회에 관한 종교와 과학의 대화’를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는 한신대 종교와과학센터와 신학사상연구소가 공동 주최했다.

강성영 한신대 총장은 개회사에서 “이타성과 협력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서의 계명과 공명하며 생명과 인간, 사회, 인류의 본성을 해명하는 열쇠”라며 “학제 간 연구의 가치를 공유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