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나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었다. 과로로 면역력이 약해져 치질과 중이염을 동시에 앓고 위염까지 겹치면서 식사조차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반 학부모 한 명이 “예수님을 믿으면 건강해지실 거예요”라며 여의도순복음교회 주보를 건넸다. 나는 “우리 집안은 불교 믿어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로부터 얼마 후인 1978년 4월 어느 주일 아침 우연히 탄 버스가 여의도광장에 멈췄다. 많은 사람이 한곳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궁금해서 따라갔는데 그곳이 여의도순복음교회 집회 장소였다. 당시 조용기 목사님은 “아픈 곳에 손을 얹고 일어서라”고 선포하셨다. 나는 귀와 아픈 부위에 손을 얹은 채 일어섰고 며칠 뒤 중이염을 앓던 귀에서 굳은 피고름이 빠져나왔다. 치질도 점차 나아갔다.
그로부터 며칠이 흘러 예배를 드리는 꿈을 꾸고 강한 마음의 이끌림을 받아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찾아갔다. 당시 11시 예배에서 삭개오에 대한 설교를 들으며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고 결국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처음으로 ‘눈물을 멈추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앞자리에 앉아 있던 여인이 돌아보며 말했다. “오실 줄 알았어요.” 나를 전도했던 학부모였다.
그날 이후 나는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매년 금식기도원에서 금식하며 기도했고 가정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흘렀다. 자녀 모두 결혼을 해서 4명의 사랑스러운 손주들이 생겼고 남편이 김포시 교육장으로 은퇴한 후 고향 김포로 내려가 텃밭을 가꾸며 지냈다.
하지만 큰딸이 결혼 10년 만에 남편을 폐암으로 떠나보내고 세 아이를 홀로 키우게 되는 시련이 닥쳤다. 나는 주중엔 딸 집에서 손주들을 돌보고 주말엔 김포에서 남편의 농사일을 도왔다. 당시 나의 유일한 피난처는 하나님이었기에 그때부터 매일 새벽기도를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날도 많았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찬양 ‘하나님의 은혜’의 가사처럼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손길과 은혜를 생각하면 모든 고난도 감사로 바뀐다. 무엇보다 남편이 암 투병 중 진실한 신앙고백을 하고 지난해 평안히 소천한 것은 오랜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요즘은 교회 주변에서 동네 주민들을 전도하는 기쁨을 누리며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신앙의 선배가 되고자 노력 중이다. 지나온 모든 길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이었다.
서성옥 하늘교회 집사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지나온 모든 길,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
입력 2025-04-12 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