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소용 밥솥, 빨리 먹기 같은
여러 이유 있지만… 젊음은
꿈이 있어 늘 배고픈 것 아닐까
여러 이유 있지만… 젊음은
꿈이 있어 늘 배고픈 것 아닐까
지난 회에서 밝혔듯 대학생이 됐다. 중년에 학교생활을 하니 고충이 많다. 학교는 멀고, 공부는 어렵고, 교우 관계도 벅차다. 이 와중에 일도 해야 한다. 그러니 수면시간이 부족해 늘 피곤하다. 한데 이 모든 걸 압도하는 문제가 있다. 이 나이에 늘 배가 고프다는 것이다. 대체 왜 학생식당의 밥은 먹어도 먹어도 허기질까.
군대 짬밥도, 사내 구내식당 식사도 먹으면 금방 배고파진다. 이 문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나는 향후 몇 년간 늘 굶주린 인간으로 살아갈 것이다. 하여 문제 해결을 위해 원인 파악부터 착수했다.
일단 문제의 시발점은 ‘산업용 밥솥’이었다. 이 대형 밥솥은 가정용보다 압력이 더 높게 설계된다. 그래야 빨리, 많이 조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데 이러면 쌀을 향한 수분 침투력이 높아져 밥알이 집에서 한 것보다 크게 부풀어진다. 예컨대 가정용 밥 한 그릇에 쌀이 10톨 들어갔다면 학생식당 밥 한 그릇에는 8톨 정도만 들어가는 셈. 그럼에도 외관상으로 비슷해 보이니 우리는 적당히 먹었다고 착각하게 된다. 게다가 식판이 평평하니 조금만 떠도 ‘고봉밥’처럼 보인다.
저출생 시대에는 청춘남녀가 연애를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데, 잘 보이고 싶은 여학생과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장정들은 자기검열까지 해가며 밥을 뜨는 것이다(내 경우는 날씬한 소설가를 지향하는 자아의 감시를 받는다). 게다가 이 밥솥은 온도도 높아 쌀의 전분을 더욱 ‘젤라틴화’시켜 뱃속에서 금방 풀어져버린다(요컨대 밥의 탈을 쓴 뻥튀기다). 이러니 내가 늘 고플 수밖에.
한데 학생식당의 식단은 단백질, 지방 위주가 아니다. 즉시 쓸 수 있는 에너지원인 탄수화물 위주다. 이 대목에서 나는 뫼비우스의 띠 위를 끝없이 반복 질주하는 신세가 된다. 그렇다. 가장 중요한 탄수화물은 윗단락에서 설명한 그 문제의 밥(!)이다.
아아, 사회적 요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인간의 뇌는 대개 식사 시작 후 15~20분에 포만감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학생식당의 줄은 늘 길다. 먹는 중에도 기다리는 학생의 눈치를 봐야 한다. 나처럼 한평생 눈치 보고 살아오고, 지금도 편집자, 출판사 대표, 아내, 아들, 독자 눈치까지 보는, 한마디로 눈치가 DNA에 새겨진 인간은 배가 불렀다고 인식하기도 전에 식사를 마쳐야 한다. 게다가 무리에는 식사를 그저 해치우는 것쯤으로 여기는 원시적 인간이 꼭 있지 않은가. 그 ‘자기만의 속도로 사는 인간’에게 보조를 맞추다 보면 나의 뇌는 포만감을 느낄 여유가 없다.
하여 이런 말을 이미 교수가 된 친구와 후배들에게 하니 사뭇 반응이 다르다. “그래? 나는 딱히 배고픈 줄 모르겠는데?” 아뿔싸! 내 연구에 가장 중요한 핵심 변인이 빠졌던 것이다. 바로 심리적 기제! 즉 평가받고, 관리 당하는 종속적 존재는 독립적 존재보다 더 빨리 고파지는 것이다. 신경을 많이 쓰면 뇌 활동량이 늘어나고, 이로 인해 에너지원인 포도당 소비가 늘어나니까. 이 와중에 눈치 없는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까지 나와서 식욕을 자극한다. 게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눈치 없는 위산까지 분비돼 더 빨리 허기진다. 한데 이게 전부일까.
아니다. 20여 년 전, 히딩크 감독은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여전히 배 고프다.” 그렇다. 아직 하고픈 게 많은 학생, 신입사원, 군인은 유달리 허기지다.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고, 이뤄야 할 과제가 있고, 나아가 꿈이 있다면 심리적 차원에서는 물론 물리적 차원에서도 주린 것이다. 하여 만약 지금 허기가 느껴진다면 당신의 삶은 풍족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삶을 바꿀 가능성이 있기에 마음도 배도 허전한 것이다.
이 조사 후 나는 결국 허기라는 존재를 수긍하기로 했다. 게다가 장 뤽 고다르가 이런 말도 하지 않았던가. “예술가는 세상에 맞서 꿈꾸는 자다. 그래서 늘 배고프다.” 물론 나는 예술을 제대로 한 적은 없지만….
최민석(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