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미움이 판단을 흐릴 때

입력 2025-04-09 00:34

“1억원을 드리겠습니다. 단, 당신이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100억원을 주겠습니다.”

이런 제안이 주어졌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할까. 얼핏 생각하면 당연히 받겠다고 할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면 받지 않겠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이익을 얻는 것보다 미운 사람이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게 싫기 때문이다. 선뜻 받겠다고 말할 수 있다면, 어쩌면 진심으로 미워하는 사람이 없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비슷한 이야기로 러시아에서 전해 내려오는 우화가 있다. 신이 한 농부에게 말했다. “네가 원하는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겠다. 다만 너의 이웃에게는 그것의 두 배를 주겠다.” 그러자 농부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제 한쪽 눈을 멀게 해주십시오.”

섬뜩하고도 씁쓸한 이야기다. 남이 이익 보는 것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거나, 심지어 스스로를 해치기까지 하는 인간 심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우리나라에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다. 절대적으로 내 상황이 나빠지지 않았어도 남과 비교했을 때 손해 보는 듯한 느낌, 이른바 ‘상대적 박탈감’이 스스로를 괴롭히는 감정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심리는 법원 조정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상속 분쟁이 그렇다. 돌아가신 부모님 유산이 충분하더라도 형제자매가 자신보다 더 많은 몫을 받는 것을 참지 못해 조정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재판에서 이기더라도 변호사비와 집행비 등 소요되는 비용을 생각하면 실질적으로 받는 이익은 미미한데, 상대방이 괘씸하다는 이유로 소송을 고집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번은 이렇게 오랫동안 재판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돈을 한푼도 받지 못한 채 조정 자리에 온 소송 당사자에게 물은 적이 있다. “선생님, 약간 양보하셔서 지금이라도 실제로 돈을 손에 넣는 게 낫지 않으세요? 재판에 이기셔도 변호사비, 집행비가 들고, 그때 상대방에게 집행할 재산이 남아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저도 다 압니다. 그런데 저 사람이 그동안 내 돈으로 사업을 해서 수익을 계속 봤단 말입니다. 그걸 생각하면 더 받았으면 받았지, 어떻게 양보를 합니까? 못합니다. 절대 못해요.”

그가 계산기까지 두드리며 상대방의 이익금을 따지던 모습은 재산에 대한 집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깊은 분노와 미움의 표출로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지금 선생님은 상대방에 대한 미움 때문에 오히려 선생님의 이익을 놓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은 여러 번의 대화와 설득 끝에 원만히 합의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결코 드물지 않다. 미움이 자신을 지배해 버릴 때,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외면하고 오히려 불리한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처럼 미움에 사로잡혀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결국 내가 쥔 것마저 놓치게 될 것이다.

최근 정치권을 보더라도 비슷한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상대 진영에 대한 극심한 혐오의 감정이 올바른 정책 판단을 방해하고, 국민을 위한 선택 대신 진영 간 감정싸움으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미움이라는 감정이 이성의 눈을 가린다면, 우리 공동체가 향해 나아가야 할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계속 뒷걸음질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증오와 불안에 사로잡힌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지키려는 것이 정말 당신에게 이익이 되는 길입니까? 아니면 미움에 사로잡혀 자신을 해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까?”

안지현 대전고법 상임조정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