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과 상상력이 넘치던 유년 시절, 만화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친구였다. 그중 가장 좋아했던 건 ‘미래소년 코난’이다. 지금도 ‘푸른 바다 저 멀리 새 희망이 넘실거린다’로 시작하는 주제가를 들으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긴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코난을 만났다. 그러나 동심을 뒤흔들었던 모험담과는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미래소년 코난’은 1978년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단독 연출한 첫 작품이다. 과학의 남용으로 핵전쟁이 일어나고, 대륙이 바다에 가라앉아 문명이 붕괴한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황폐한 지구는 자연의 생명력으로 서서히 회복되지만 소수의 생존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고립된 삶을 이어간다. 자연의 품 안에서 자란 활기찬 소년 코난은 외딴섬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평화롭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에 떠밀려온 소녀 라나를 만나게 되는데 과학과 기계가 권력이 되어 사람들을 지배하는 도시에서 도망쳐 나온 소녀였다. 이야기는 소녀를 뒤쫓는 일당과 코난의 대립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을 넘어선다. 기술의 힘을 가졌지만 자유를 잃고 억압당하는 사람들과 가진 것은 적어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의 대비가 선명하게 그려진다.
어린 시절의 나는 용기와 정의로 빛나는 코난의 영웅적 서사에 몰입했다. 하지만 어른이 돼 다시 만난 그는 소녀를 지키는 영웅 그 이상의 인물이었다. 문명이 남긴 잔해 위에서 인간과 자연, 기술과 윤리, 자유와 억압이 맞부딪히는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였다. 역경을 헤쳐가는 소년의 모습은 갈등과 고난 속에서도 인간성이 어떻게 지켜지고 유지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코난이 마주한 세상, 등장인물의 말과 태도 속에는 이러한 질문과 답이 줄곧 담겨 있었다. 4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미래소년 코난’이 사랑받는 이유는, 그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