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

입력 2025-04-09 03:06

아이가 잘못을 저지를 때 부모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화를 내며 아이를 혼내거나 한 번쯤 참아줍니다. 참아줄 때는 아이가 부모의 마음을 알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참습니다. 혼날 줄 알았던 아이는 엄마가 참는 것을 보고 태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엄마가 모른 척해주니 이제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는 아이는 지혜로운 아이입니다. 하지만 ‘엄마가 모른 척하니 계속 잘못을 저지르자’고 판단하는 아이는 지혜롭지 못한 아이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예수님은 기다려주고 참아주십니다.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은 잘못을 빨리 깨닫고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은 율법에 따라 사형을 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간음을 허용하시는 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요 8:11)

예수님은 계속해서 참고 기다리시면서 끊임없이 회개의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언제 어디서라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죄를 자백하면 용서해주시니 이것은 기회 중의 기회입니다. 회개할 기회를 얻었다면 다시는 잘못을 하지 않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두 개의 고층 건물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한쪽 건물 옥상에서 다른 건물 옥상으로 다리가 연결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다리는 폭이 매우 좁습니다. 따라서 다리 위를 횡단하려면 중심을 잘 잡아야 합니다. 만약 중심을 잡지 못하면 아래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중심을 잘 잡으려면 반대편 건물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어야 합니다. 한눈을 팔면 아래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출발하는 곳은 출생이며 반대편 건물은 천국입니다. 두 건물을 연결하고 있는 다리는 ‘공의’입니다. 공의는 타협이 없어서 자칫하면 낙오됩니다. 공의의 다리를 건너다가 거짓말을 했다고 칩시다. 거짓말은 불의한 것이기에 공의로운 심판을 받고 그에 맞는 벌을 받아야 합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한눈을 판 것과 같기에 다리를 건너는 과정이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공의의 다리를 건너는 것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좌로도 우로도 치우쳐선 안 됩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정확하게 가야 합니다.

공의의 다리를 건너는 과정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마음에 못된 생각이 들어서 밑으로 떨어지고 상황이 열악해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의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죄를 지으면 모두 지옥에 가야 합니다.

이때 공의의 다리를 좀 더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넘어지려고 하면 손을 뻗어서 다시 위로 올려주고 떨어지는 사람까지 붙잡아서 다시 위로 올려서 그 길을 가게 해줍니다. 떨어지는 사람을 붙잡아 올리는 손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하지만 회개의 기회는 제한적입니다. 회개는 숨 쉬는 동안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교인들은 회개의 기회를 무제한 누릴 수 있는 것처럼 마음껏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재빨리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다시 공의의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붙잡읍시다. 내 귀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오늘의 호흡은 회개의 기회입니다. 주님의 따뜻한 손을 붙잡읍시다. 하루하루 주님께 사랑받는 인생을 삽시다.

김승리 목사(부천 성수교회)

◇부천 성수교회는 성경적인 토대 위에 건강한 신앙 형성과 전승을 이뤄가는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