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상왕 정치를 편 건 태종이다. 태종은 조선 왕조에서 유일하게 왕위를 아들(세종)에게 물려주고 내려왔지만 권력을 놓지는 않았다. 태종은 “세종이 30살(즉위 당시 21살)이 되기 전까지는 내가 군권을 갖겠다”고 했다. 세종 1년(1419년) 왜구를 토벌하기 위한 ‘대마도 정벌’은 태종이 진두지휘했다. 왕의 외척 정치를 근절하겠다며 사돈인 세종의 장인을 제거했다. 태종이 오래 살았다면(1422년 사망) 성군 세종의 업적은 어찌 됐을지 궁금하다. 정조도 수원 화성 축성을 마무리한 뒤 순조에게 왕위를 넘기고 화성행궁에서 인사권과 군권 등을 휘두를 계획이었지만 도중 사망하며 뜻을 이루지 못했다.
권력욕의 특성상 국가 수반이 퇴임 후 상왕 노릇 하려는 건 요즘 시대에도 드문 일은 아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후임자인 존 메이저 내각의 정책에 개입하다 전·현 권력 갈등을 불렀다.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총리도 사망 전까지 기시다 후미오 내각의 인사, 특사 문제를 적극 챙겼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퇴임 후 공화당을 사실상 컨트롤하며 재임에 성공했다. 한국에선 전두환 전 대통령이 가장 노골적으로 상왕을 꿈꿨다. 퇴임 후 일해재단, 국가원로자문회의를 이끌며 국정을 조종하려 했다. 상왕 정치용 비자금을 모금한 사실도 훗날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둘러싼 상왕 관저정치가 논란이다. 파면된 당일 관저를 찾은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선 준비를 잘해 꼭 승리하라”고 당부했다. 지지자들에겐 “늘 여러분 곁을 지키겠다” “여러분 여정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라고 했다. 파면 결정에 대한 승복 메시지는 없고 지지층 결집만 호소하는 모양새다. 똑같이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도 상반된 행보다. 대통령 재임 시 온갖 자충수로 국정 난맥, 여당의 선거 참패에 일조했고 시대착오적 비상계엄으로 탄핵을 자초했다. 퇴임도 아닌 중도 퇴진한 마당에 반성 아닌 훈수 두는 모습이 개운치 않다. 그는 정말 한국의 트럼프를 꿈꾸는 걸까.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