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주말 식탁에 다른 주제가 올라왔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이다.” “관세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라면서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지막지한 관세를 두고 질문과 관측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마지막에 남은 건 단 하나의 물음. “왜 그러는 걸까.”
시장과 전문가들은 트럼프를 ‘광인(狂人)’, 트럼프 관세를 ‘미치광이 정책’으로 여긴다. 그가 상호관세를 발표한 지난 2일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완전히 미쳤다”는 뉴스레터를 발송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친 짓”이라고 비판했다. 거침없이 쏟아내는 관세 폭탄을 보면 막무가내이기는 하다. 미국 금융시장은 출렁이고, 소비심리는 식기 시작했다. 모든 수입품에 ‘폭탄’이라 부를 만한 관세를 매기면 미국 내 물가 상승 압력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자연스레 경기 침체를 유발한다. 인플레이션(물가 폭등)은 물론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을 걱정하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하지만 트럼프는 멈칫하지도 않고 멈출 생각도 없다. “예상했다”거나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첫 번째 대통령 임기 때도 그랬지만 그가 줄기차게 원하는 건 ‘미국 제조업 부활’이다. 이건 무역적자 해소, 공정한(그들 시각에서 공정한) 무역이라고 바꿔 부를 수도 있다. 트럼프 1기에선 의도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못을 사례로 보자. 2018년 3월 국가안보를 이유로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 관세를 부과하자 미국 철강·알루미늄 기업들도 제품 가격을 올리며 수익을 극대화했다. 이 비용은 2차 금속 가공업체에 고스란히 넘어갔다. 미국 내 못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미드콘티넨트 스틸앤드와이어’는 철강 관세 이후 매출 급감을 경험했다. 결국 직원 80명을 해고했고, 공장 폐쇄 우려로 120명이 자진퇴사했다. 미 상무부는 뒤늦게 이 회사에 관세 면제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한 번 해봤던 거라 그런지 트럼프는 두 번째 임기에선 더 대담해졌다. 영리하고 거칠게(smart and tough). 미리 그려놓은 밑그림을 따라 하나씩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관세 폭탄 다음에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눈치다. 그게 무얼까. 밑그림을 엿볼 수 있는 실마리가 있다. 투자자문사인 허드슨베이캐피털에서 매크로 전략 담당자였던 스티븐 미란은 지난해 11월 ‘글로벌 무역시스템 재구성 사용자 가이드’라는 41쪽 보고서를 냈다. 미란은 현재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이다. ‘미란 보고서’로도 불리는 이 문서는 제조업 부진, 무역적자의 원인으로 ‘강한 달러’를 지목한다. 기축통화다 보니 달러화 수요가 폭증했고, 달러화 강세는 미국 수출품의 가격경쟁력 하락(수입품의 가격경쟁력 상승)을 유발했다고 진단한다. 일반적으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많은 나라의 통화가치는 하락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못하다. 이게 이른바 ‘트레핀 딜레마’다.
미란 보고서는 트레핀 딜레마 극복에 초점을 맞춘다. ‘구조적 강달러 해소’ ‘제조업 부흥’ ‘기축통화국(세계 패권국) 유지’라는 양립 불가능한 명제를 등호로 연결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수단으로 무이자 장기 국채 발행을 뼈대로 하는 ‘마러라고 협정(합의)’도 제안한다. 기축통화의 힘과 달러화 가치 절하의 이익을 동시에 누리겠다는 셈법이다.
보고서대로 간다면 세계 경제는 관세 폭탄보다 더 위험한 대형 폭풍을 맞이하게 된다. 물론 트럼프의 발걸음이 마러라고로 향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한국은 아찔한 ‘트럼프 롤러코스터’에 이미 올라탔다. 정치·이념 공방을 벌일 여유 따위는 없다. 청구서는 협상 테이블에 올라왔다.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야 한다. 살아남는 게 이기는 거다.
김찬희 편집국 부국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