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상황 따른 계엄 발동 안돼”… 국가긴급권 한계 제시한 헌재

입력 2025-04-06 19:03 수정 2025-04-07 00:09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리면서 국가긴급권 발동의 한계를 명확히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이 국민을 통합할 책무를 위반하고 비상계엄 선포 권한을 남용했다는 게 헌재 결론이다. 향후 한국사회 지도자들에게 대통령으로서 해선 안 되는 일들의 기준을 밝힌 것이란 평가다. 윤 전 대통령은 헌재 변론에서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강변했지만, 많은 발언들이 오히려 자충수가 됐다.

헌재는 지난 4일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가 재현됐다”고 결정문에 적었다. 재판부는 “박정희 전 대통령 유고로 1979년 10월 선포된 계엄, 1993년 8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 발령 외에는 그간 국가긴급권이 행사되지 않았다”고 했다. 헌재는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국민의 헌법수호 의지가 확고해지며 나타난 당연한 결과였지만, 윤 전 대통령이 국가긴급권 남용 역사를 재현해 국민을 큰 충격에 빠트렸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 계엄 동기에 대해 “야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한 국회와의 대립을 타개할 의도였다”고 적시했다. 정치적 목적의 계엄 선포를 명확히 한 것이다. 한 헌법연구관은 6일 “윤 전 대통령은 긴급상황 판단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계엄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발동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오직 법적 요건에 맞게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은 그간 “계엄이 2시간30분 만에 신속히 해제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국민은 헌정사에서 다시는 군의 정치 개입을 반복하지 않고자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헌법에 명시했으나, 나라를 위해 봉사해 온 군인들이 또다시 일반 시민들과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군의 정치적 중립성에 반해 국군통수권을 행사한 것은 ‘국군통수의무 위반’이라고 최초로 명시하며 대통령의 군 통솔 권한에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경고성 계엄 주장은 가장 큰 자충수가 됐다. 헌재는 “‘경고성 계엄’ 주장만으로도 중대 위기상황에서 비롯된 군사상 필요로 계엄을 선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자의적 계엄이라는 점이 오히려 윤 전 대통령 발언으로 입증됐다는 뜻이다. 평화적 계엄 주장도 배척됐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후 간부 위주 280명 군인을 실탄 없이 투입할 것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계엄 사령부 지휘부) 곽종근·이진우·여인형 어느 누구도 그런 지시를 전달받은 사실이 없다”며 “280명만의 투입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던 것”이라고 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이 아닌 다른 선택지도 많았다는 점도 짚었다.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비상계엄을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을 수 없다는 취지다. 헌재는 “먼저 대국민 담화 등을 통해, 이로써도 부족하다면 탄핵심판 제도 등에 대한 헌법개정안 발의, 국가 안위에 대한 중요정책의 국민투표부의권 행사를 통해 경고와 호소를 할 수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